풀뿌리 달동네 불량주거지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인간성이나 사회성이 불량한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그곳은 단지 우리 사회가 임의로 규정한 물리적인 환경의 수준에 따라 상대적으로 정해진 용어일 뿐이다. 진짜 삶의 현장에서의 리얼리즘을 미화하면서도 개발 현장 에서의 개발 리얼리즘은 개선하지 못하는 현실. 리얼리즘과 리얼리즘의 충돌 앞에서 전문인은 무력하기만 하다. 거센 물길은 땅을 적시는 대신 곡식이 뿌리내릴 흙을 씻어가 버린다. 동네를 밖에서 잠식해 들어가는 대개발, 안에서 부터 곪게 만드는 다세대 다가구의 난립, 그리고 원천적으로 동네를 옥죄는 고가도로와 터널 등이 그런 '거센 물길'에 해당한다. 위로부터의 발상이 아래의 자생력을, 지역의 논리가 장소의 잠재력을, 공간의 질서가 장소의 다양함을, 수단이 목적을 지배 하는 경향은 하나의 관성으로 우리 도시의 근대화 과정에 일관 되게 되풀이 나타나고 있다. 서울의 달동네는 항상 그 위치를 바꾼다. 당시 아무도 살지 않는 산꼭대기에 다다르면 짐을 풀고 새로운 달동네를 만든다. 비가 오면 질척거리기는 하지만 사람이 다닐 수 있을만한 길을 낼 것이고, 집을 지을 것이다. 다음 선거철 까지는 길이 포장될 것이고, 버스노선도 하나쯤 생길터이다. 또 요행히 이 지역 국회 의원이 공약을 지켜준다면 상하수도 시설도 얻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사람이 살만한 동네가 되면 다시 재개발의 바람이 불 것이고, 달동네주민은 한번 더 짐을 싸게 될 것이다. 이들이야말로 서울의 구석구석에 새 동네를 끊임없이 개철해내는 '서울의 프론티어'들인 것이다. 인간의 지식은 터무니 없이 간사한 역할을 맡을때가 많다. 우리 땅에서도 혁명은 구체제의 작은 후퇴, 그리고 조그마한 개선들에 의해 저지 되었다.
EEEK
2003-08-11 0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