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곡에서 묵다 계곡에서 묵다 정한용 화양동, 어둠이 가득하다 하늘에 수없이 박힌 별들이 틈을 내어준다 아카시아 향기가 밤길을 따라온다 낯에 물고기가 왜가리와 숙덕이던 자리에도 촉촉하고 싸늘한 공기가 내려앉았다 묵은 마음을 깨끗이 씻어서 계곡 화강암 흰 너럭바위에 널어 놓았더니 사흘 햇살에 온몸이 뽀송뽀송해졌다 연두색에서 초록색으로 막 페이지를 넘기는 산자락도 지금은 웅크리고 잠들었다 새벽에는 서늘한 들창바람에 잠이 깨었는데 유리창 틈으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푸르고 커다란 별 수만 광년 밖에서 온 사람이었다. '당신이 온 걸 꿈결에 알았어 아주 오래오래 날 들여보고 있었지?' 그 별이 낮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이 계곡 금낭화 옆에 앉아 생각에 젖었을 때 나도 산나리 옆자리에 있었어' 아침이 다가오자 별은 빛살 새로 스며들어갔다 작은 것에 매여 사는 하루하루에 대해 우리가 함께 걸어가는 이 길에 대해 어둠과 미래와 단음과 쾌락과 지혜로움에 대해 거듭 새겨보았다 그렇게 일주일만 산꽃과 물고기와 몸 섞고나면 세상이 환하게 뚫릴 것 같았다 술 안마셔도 될 것 같았다 부르지 않아도 닿을 것 같았다 당신 비록 멀리 있어도 그리움이 맑아 더 향기로울 것 같았다 ------------------------------ 2005. 08. 광양 백운산 계곡
rocker~
2005-08-29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