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수첩 4 (할머니들의 피서-2) 이가 없는 할머니는 수박살을 포도알처럼 조금씩 떼어서 먹는데, 젊은 아낙은 볼이 미어지게 한 움큼씩 먹으니 수박 반통이 금방 바닥이 난다. “성님, 요놈의 수박 징허게 다요이. 설탕보다 더 헝구마.” 아낙의 넉살에도 할머니는 대꾸 없이 수박살만 헤집고 있다. “아주머니, 잘못하면 체하시겠어요.” 걱정이 된 내가 간섭을 하자, “아, 체해도 가스활멩수 한 벵 묵어불면 금방 낫어라우.” 아낙은 걱정도 팔자라는 투다. 뚜둑뚜둑 모래가 튀어오를 정도로 햇살은 이글거리고, 하늘을 달리던 구름 한 점 머리 위에서 맴을 도는 낮. 수박살을 헤집던 할머니의 눈시울이 갑자기 붉어진다. “성님, 또 영감 생각허시요?” 아낙이 입으로 할머니를 살핀다. “다른 사람 같으믄 폴새 잊어 불만도 헌디... 성님도 참 에지간허요...” 할머니의 손끝이 가늘게 떨리는 것이 보였다. 불에 단 칼처럼 뜨거운 햇볕 때문인지 갑자기 셔터를 누르던 내 손 위로 모래 몇 알이 타닥, 하고 튀어올랐다...
운향
2005-08-21 0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