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수첩 3 (할머니들의 피서-1) 노인분들이 해수욕을 하다가 모래밭에서 수박을 드시는데, 연세가 드신 할머니 한 분은 아예 아래턱이 코를 차고 있다. “와따메 더운거... 해수욕이고 지랄이고 묵어야 살겄네.” 할머니가 입안 가득 수박을 넣고 우물거리는 소리를 하자, “그라지라. 금강산도 식구경이라고 안 헙디여.” 젊은 아낙이 얼른 말을 받는다. 나는 웃다말고 카메라를 접은 채 “아주머니, 식구경이 아니구요, 식후경이랍니다.” 하고 장난삼아 거들었다. “시쿠? 아, 그 소리가 그 소리 아녀? 식구들 밥 멕인 다음에 금강산 구경 가잔 소리 아녀?” “아, 맞네요. 정말 기가 막힌 풀이네요.” 아낙의 뜻풀이가 까닭없이 즐거워서 나는 연신 웃음이 나왔다. 명답이었다. 이런 신선한 깨달음이라니. “수박을 얻어먹었으니 제가 사진이나 몇 장 찍어드리지요.” 렌즈 캡을 열고 카메라를 발등 위치에 놓았다. “워따, 아짐찮고도 미안허게... 그란디... 사진 값은 안 받지라?” 나는 웃으며 거의 모래에 닿을 정도로 카메라를 낮춘 채 계속 셔터를 눌렀다...
운향
2005-08-18 0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