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으로 여는 풍경
모든 것이 두려워지던 날이 있었다.
모든 것이 자신없어지고
나를 감싸고 있는 낯선 풍경들에 지치던 날이 있었다.
단 한 순간도 쉽게 놓아선 안된다는 열정조차
힘없이 무너지던 날이 있었다....
계획에도 없던 여행을 무작정 떠났다.
홀로 오른 프랑스행 유로스타 안에 동양인은 오직 나 뿐이었다...
문득 창밖으로 눈부시게 펼쳐지던 노란 들판이 꿈결처럼 내 눈에 들어왔다.
내가 본 것은 현실이 된다.
내가 밟은 땅은 길이 되고,
내가 느끼는 것이 곧 삶이다.
도망치는 만큼, 외면하는 만큼
나는 자유로울 수 없다.
늘 보던 것, 늘 알던 것, 늘 생각하던 것만이 전부는 아냐....
짧은 순간 섬광처럼 지나갔던 낯선 풍경과
백지장 같았던 머릿속에 불현듯 떠오른 생각들.
그때 내가 본 것은 환상이었던가...
나 자신과의 대화는 꿈이었던가...
여행에서 돌아와 석 달 쯤이 지난 어느 날,
나는 거짓말처럼 그날 보았던 것과 똑같은 풍경 앞에 서 있었다...
이제 더이상 낯설지 않았다.
더이상 두렵지 않았고,
더이상 그 무엇도 망설여지지 않았다.
현실을 인정하는 순간 두려움은 사라진다.
두려움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을 때 삶은 숨쉴 수 있다.
마음의 문을 여는 순간,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이 내 눈앞에서 빛나고 있었다...
2005. 잉글랜드 남동부 국도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