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치다
중학교 때다.
학교까지 걸어가면 30여 분이 걸리는데, 그 길엔 꼭 지나쳐야만 하는 지름길인 철길이 있었다.
학교 화장실 뒤로 길게 늘어선 담벼락은 늘 기차가 품어내는 고함소리때문에 성할 날이 없었고 머얼리 기차가 존재를 알리고 갈 즈음엔
공부보다도 그 지긋지긋한 고함소리에 귀를 막으면서도 쳐다보는 밋밋한 취미가 있었다.
매일처럼 종례시간에 수첩에 적게하는 담임의 금지 조항 중에 "선로통행엄금"이란 단어가 있었는데,
그것이 어찌나 싫은 지 몇 몇이서 귀가할 때는 반항하는 의미로 써놓은 글들이 보이지 않게 까맣게 칠하고선
철길로만 귀가를 하게 되었다.
물론 가끔은 위험한 상상을 했는데, 그것은 소설 속에서나 있을 법한 예들이다.
가령, 조잘거리며 걸어가다 한 아이가 또는 내 발이 철길에 끼어서 금새라도 닥칠 것만
소리가 먼저 오는 기차를 어쩔 수 없이 맞이해야하는 상황. 그리고 핏 자국도 없이 언제 그랬냐는 듯 그 자리는 그대로일 것.
또는 다분히 공상적 상상인데, 코 앞까지 오는 기차를 두 손으로 밀어서 멈춰보는 그런 허무한 위엄.
어찌 되었든 우린 계속 들키지 않고 철길로 많이 다녔는데, 그것은 우리가 곧잘 꿈꾸는 위험한 상상이 언젠가는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아슬아슬함을 즐겼기때문인 듯 하다. 물론 도중에 우리를 일러바치는 친구들이 있었지만 가끔 따끔하게 충고만 할 뿐 직접 우릴 따라 집까지
따라오는 선생님은 없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그 뒤로 고등학교는 학교버스를 타고 다니게 되면서 그 철길은 어쩌다 한 번 가게 되었고, 다시 대학에 가면서 그 길을 걷게 되었는데
중학교 시절에 다니던 그 맛은 없었고, 그럴 만한 여유가 없었다. 다만, 사회적 혼란상으로 시위가 잦아지면서 그 철길은 참으로 절묘한 시간을 만들어주고 돌을 던지는 학생들에게 가끔은 방어막이 되어주기도 했다.
적어도 기차가 지나갈 동안은 직격탄과 같은 묵직한 최루탄은 쏠 수 없었기때문에 학생들의 함성이 기차의 고함소리와 맞물리면서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하지만 중학교때 상상으로 갖지 못했던 일이 일어났는데, 소문으로 있을 뿐 확인된 바 없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그것은 치과대학을 다니던 학생이 중간 고사 기간에 아무 생각없이 책을 들고 걸어가다가 건널목에서 사라져버렸다는 이야기다. 누구는 공부를 그만큼 열심히 하는 친구가 있다는 이야기라든가, 아니 정말로 그런 일이 있었다면서 무의식적으로 죽었으니 그리 아프지 않고 죽음을 맞이했을거라는 말까지 한 동안사건이 있었다는 철길을 요리조리 살펴보는 짖궂은 사람들도 있었다고도 했다.
지리한 장마에 쏜살 같이 자신의 존재를 알리며 나와 예림이를 휙 지나칠 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귀 막어"를 먼저했다.
이상한 것은 난 귀에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았고, 정말이지 오는 소리도 못 들어서 하마터면 사고 상황을 만날 수도 있었지 않았나 싶었다.
녀석은 너무 좋아하면서 귀를 막았는데, 아마도 어렸을 때 아슬아슬함에서 벗어남으로써 드는 긴장감의 쾌감이지 않았을까 싶다.
정말이지 기차의 고함소리 따라 사라질 수도 있었을까.
다음에 기회가 되면 내 소리가 삼켜지는 지도 한 번 해봐야겠다.
그러고보니 중학교때 기차 바로 옆에서 귀를 막으면서도 꽤나 소리를 질렀던 듯 싶다.
그러고나면 속이 개운해졌던 생각이 든다.
시간은 그렇게 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