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삶
흔히들 사람사는 맛이 나는 곳이고 서민들의 사는 모습이 있는 곳 청계천이라 한다.
주말이 되면 늘상 카메라를 둘러매고 청계천을 다니곤 한다.
이날 역시 동료와 함께 벼룩시장등을 구경하며 다니다 날씨도 차고 출출하여 국수를 먹으러 포장마차에 앉았다.
이 포장마차는 2005년의 시작인 지금 이곳의 사정과 맞게 가격을 1500원에 고수하고 있다.
이런 포장마차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광경인 서민들의 소주 한잔, 막걸리 한잔을 마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한잔 한잔에 삶을 지탱해 나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국수를 먹기 시작한지 얼마나 지났을까..... 소주와 막설리를 마시던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작은 소란이 일어났다.
마침 포장마차 의자에 앉아 거리 풍경을 찍고 있던 나에게 사진과 같은 장면이 포착되었다.
처음엔 작은 소란이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소란은 커지고 있었다.
상대는 40대 초반의 아저씨와 60대 이상이신 노인이다.
그런데 그 소란이 일어나도 말리는 사람이 하나 없다.
상대적으로 힘이 센 40대 아저씨는 노인을 붙잡고 놓칠 않는다. 노인 역시 쉽게 물러서지 않는다.
이런 저런 실랑이를 벌이다 노인이 앞으로 쓰러졌다.
노인은 일어나기 위해 손으로 땅을 짚고 무릎을 꿇은 상태였고 40대 아저씨는 여전히 노인의 어깨를 잡고 있었다.
그 순간 차마 참지 못하는 광경이 벌어졌다.
일어나기 위해 손을 땅에 짚고 두 무릎을 꿇고 있는 노인을 40대 아저씨가 아스팔트 위에서 질질 끌고 있는 것이다.
노인의 손은 아스팔트 바닥에 그리고 여전히 무릎을 꿇고 있는 상태로 끌려가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말리지 않는다...
순간 나는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도저히 참지 못해 나섰다.
두 사람을 떨어뜨려 놓고 한참 동안 40대 아저씨를 말렸다.
40대 아저씨는 자기가 한 잘못에 대해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노인을 그렇게 다루어도 되느냐?"라는 말에 "그럴만 하다"라는 대답만 올뿐이었다.
그런 말에 조금 흥분한 나는 40대 아저씨를 말리는 동시에 나 역시 그 소란의 하나의 주체가 되었다.
노인은 아직도 분이 안풀렸는지 40대 아저씨에게 달려들고 두 사람을 말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 소란이 10여분이 흘러서야 그제서야 구경만 하던 사람들이 하나 둘 말리기 시작했다.
나는 어느 30대 노점 상인에 의해 그 소란에서 나오게 되었다.
나는 나를 말리는 30대 상인에게 말했다.
"왜 저렇게 노인이 당하고 있는데 아무도 말리지 않느냐!!!"
상인에게서 돌아오는 한마디 있었다.
"젊은이는 참견하지 마쇼. 청계천의 모습이요."
아직까지 나에게 흥분이 남아있었고 그말이 무슨 말인지 몰라 나는 상인에게 되물었다.
"아무리 그래도 저 상황이 말이 되느냐!!!"
그런데 나는 그 상인의 한마디에 의해 더 이상 이 소란에 개입하지 못했다.
"이것이 바로 청계천에서 살아가는 방식이오. 이곳 사람들만이 알 수 있는 청계천의 삶이란 말이오"
그때 나는 조그마한 충격을 받았고 정확히 느낌은 오지 않았으나 그말에 동감하고 그 소란에서 빠져나왔다.
다행히 그 소란은 거기에서 끝났지만 나는 상인에 말을 되집어 보고 여러 가지 생각에 빠져 한동안 멍했다.
아직까지도 그 말의 의미를 정확히 모르겠지만 어느정도 마음에 와닿는 말이다.
나중에 거리에서 다시 만난 노인은 자전거를 끌며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그 노인의 뒷모습에서는 측은함 보다는 끈질긴 생명력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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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날에도 어두운 분위기와 회색톤의 거리, 그리고 사람들.
그속에서도 그들만이 알 수 있는 이곳을 살아가는 방식이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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