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 . 공기가 차갑다. 아니, 피부에 닿는 공기보다도 공간이 차갑게 느껴진다. 막차는 아직 오지 않았다. 어딘가를 지나 이곳을 향해 오고 있을 것이다. 네다섯 정도 되는 사람이 벤치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이곳은 버스 정류장이다. 시골의 버스정류장에서는 밤 9시가 되어가는 이 시각이면 모든 게 졸고 있기 마련이다. 매점의 과자봉지들이며, 표를 파는 노인도, 막차를 기다리는 사람들도 조용히 앉아 곧 다가올 하루의 끝을 바라보며 졸고 있다. 막차는 아직 오지 않고 있다. 어딘가를 지나 이곳으로 오고 있을 것이다. 의식적으로 이런 생각을 해주지 않으면 태연히 앉아 있기가 힘들다. 버스 한 대가 들어온다. 기다리던 두 사람을 태우고 떠나버린다. 둘만큼 적어진 사람이 남아 고요와 싸우고 있다. 막차는 아직 지나가지 않았다. 그러므로 곧 올 것이다. 사람이 없는 대합실을 서성이다가 화장실로 들어가본다. 냄새가 나고 황폐해 보이는 공중화장실이다. 거울을 보니 낯선 풍경속에 초조한 표정을 한 여자가 초조하지 않다는 듯 서 있다. 그 모습이 왠지 마음에 든다. 사진기를 꺼내 사진을 찍고. 머리를 매만지고 입술을 한번 앙 물었다가 풀어주고 코를 한번 찡긋거려본다. 여기서 나가면 또다시 두어명의 사람들과 나란히 앉아 오지 않을 것만 같은 버스를 기다려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침묵을 응시하는 어느 순간, 어둠과 고요를 깨뜨리고서 막차는 들어올 것이다. 또다른 고요를 만나러 가기 위해.
블루링고
2005-04-21 0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