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끄레기가 나를 부른 이유
토요일에 낯선 사람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까끄레기오름에 꼭 좀 데려다주라고 사정을하더군요..
(오름은 제주에서 화산활동으로 생긴 자그마한 산으로 360여개가 있습니다. 산방산이나 산굼부리도 오름입니다)
근데 꿈이었습니다. 헐... 기분이 묘하더군요.
무슨 끔찍한 장면이 날 기다리고 있을지라도 한번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비가 조금씩 내리는 오후.. 까끄레기에 혼자 도착했습니다.
오름을 올라가는 중턱에서 마주친 저 예쁜 야생화들이 절 부른건 설마 아닐텐데..
오름 분화구 안에 있는 무덤 중에 유독 한 무덤만이 조릿대(대나무를 닮은 여러해살이 식물)에 포위당해서 숨막히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혹 무덤 주인이 답답해서 절 불렀던걸까요.....
윗편에 있는 무덤의 돌담(산담이라고하며 제주의 무덤에는 말과 소가 드나들지 못하도록 돌담으로 둘러쳐져 있습니다)에 낀 이끼가 예뻐서 접사사진을 찍던 중에..
시문(屍門 : 귀신이 드나드는 문 / 오른쪽에 시문이 있으므로 고인은 남자입니다)이 보이길래 살펴봤더니 다 내려앉고 통로는 잡목의 굵은 줄기들이 점령해있더군요...
불현듯 꿈속에 나타났던 낯선 남자분이 이 무덤의 주인일거라는 느낌이 들더군요.
시문을 통해서 무덤 밖으로 나갔는데 이게 내려앉아버리는 바람에 밖에서 들어오지도 못하고 서성거리다가 꿈을 통해서 저에게 도움을 청했을거란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뭐 사실 전 점이라는 것도 한 번 본적도 없고 이러한 종류의 이야기들을 믿지도 않지만 그냥 왠지 맘 편하게 해드리고 싶어서 내려앉은 돌들을 걷어올리고 통로에 자리잡은 잡목 줄기들도 뽑아 냈지요.
그리고는 무덤의 주인공이 어떤 분인지 괜히 궁금해서 비석을 살펴봤는데..................
순간 등골이 오싹해졌습니다.. 무덤의 주인은 저와 같은 신천 강씨(康氏)였던 것입니다. 온몸에 전율이 흐르더군요.
1864년에 태어나서 1924년에 타계하신 분이었습니다.
우연이라면 우연일 수도 있겠지만 꿈속에 낯선 이가 이곳으로 날 이끌었던 것도 그렇고..
여러개의 무덤중 유독 이곳에 그리고 강씨 성을 가진 고인의 무덤에 발이 멈춰선 것도...
나머지 무덤들 전부 확인은 못해봤지만 얼핏 본 다른 무덤은 성이 틀렸었거든요.
우연의 일치라고 치부해버리기엔 뭔가가 절 사로잡는듯한 느낌이 들더군요.
절을 올린후 시공간을 초월한 뭔가 이상한게 절 꽤뚫는 듯한 느낌에 휩싸인채 오름을 내려왔습니다.
다 내려오니 갑자기 비가 쏟아지기 시작하더군요. 참 형언하기 어려운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산행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