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하고자 하는 그 마음만 쉬어라 대학교 3학년때의 일이다. 두번의 지방선거 이후 아버지는 최악의 위기에 처해있었다. 선거에 지출한 막대한 재정으로, 운영하던 작은 건설회사는 부도위기에 놓여있었고 가정 또한 불안했다. 아버지는 위기에서 벗어나려 노력했고, 여기저기 도움을 요청하셨다. 여러 사람들이 아버지를 도와주었다. 하지만 사정이 나아지지 않자 그 피해는 그들에게 돌아갔다. 그중에 한분이 바로 외할아버지셨다. 그때를 잊을수 없었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은 2000년 5월이었다. 1999년 겨울. 외할아버지는 중풍으로 쓰러지셨다. 97년. 외할아버지는 아버지의 간곡한 부탁에 도움을 주셨으나 그것으로도 부족했다. 소유하신 산과 논까지 파셨다. 있는대로 도움을 주고자 빚까지 지셨다. 그것이 화근이 되었던 것이다. 재정적인 위기가 악화되면서 우리 집 뿐만 아니라 외할아버지에게도 커다란 짐이 되었다. 외할아버지는 고민했다. 어떻게 하면 그 문제를 풀수 있을까... 친척들 그 누구도 그렇게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도움을 받은 나의 아버지 마저도 더욱 힘든 상황에 빠져있었다. 하지만 외할아버지는 어느 누구에게도 이런 고민을 나누지 않으셨다. 입을 굳게 다무셨던 것이다. 조금씩 몸도 많이 약해지셨다. 결국 혼자 끙끙앓으시다가 그해 겨울, 차가운 방바닥에서 '중풍'이란 악마의 아가리에 걸려들게 되었다. 중풍을 비롯한 합병증이였다... 할아버지가 입원하신후에도 우리집안은 좀처럼 나아지지 못했다. 아버지의 사업은 더욱 수렁으로 빠지게 되었고, 집안의 불화 또한 심했다. 모두가 힘들었다. 외할아버지를 모시던 외삼촌네도 무척이나 힘드셨다. 병문안을 가면 외할아버지는 거의 말을 못하셨다. 몇번이나 입을 뻐끔거리며 무언가를 말하려 애쓰셨을 뿐이다. 중풍은 더욱 악화되었고, 이제 임종만 기다렸다. 친척간에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다. 외할아버지를 누가 곤경에 빠뜨렸는가... 나의 아버지는 할말이 없었다. 임종직전 외할아버지는 무언가를 말하려 애쓰셨고, 장손인 외삼촌이 마지막까지 손을 잡아드렸다. 모든 친척이 보는 가운데 외할아버지는 눈물을 글썽이며 눈을 감으셨다. 어머니와 함께 가끔씩 외할머니댁을 방문한다. 요전에는 안양 외삼촌댁에 계시다 좀체로 적응을 못하셔서 다시 내려오셨다고 한다. 외할머니를 볼때면 외할아버지가 떠오른다. 가슴 한켠에서 그 어떤 서럽고도 쓸쓸한 그리움의 바람이 분다... 아직도 외할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 떠오른다. 있는 힘을 다해 무언가를 말씀하려 하셨던 것을... 무엇을 말씀하려 하셨던 것일까. 그것이 얼마나 우리에게 필요했길래 열리지 않는 입을 애써 열어가며 말씀하시려 했던 것일까... 어떻게든 위기를 모면하고자 하면 할수록 더욱 큰 수렁으로 빠져들었던 아버지의 사업... 매달리면 매달릴수록 그 절망과 한숨은 더욱 커졌을 뿐이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포기하고 거기서 멈춰섰더라면... 하지만 아버지는 거기서 물러서질 않으셨던 것이다. 어떻게든 그 위기를 만회하고자 노력하셨던 것이다. 그것이 오히려 화를 불러일으켰다. 두번째의 선거는 우리가 가진 집과 땅들.. 모든 것을 앗아갔다. 외할아버지까지... 외할아버지는 말씀하신다. '살려고 그 마음, 그 마음만 쉬게 하여라... 그것이 오히려 죽음에 이르게 하니, 그쯤에서 포기하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여라...' 오늘도 외할머니댂에 어머니께서 끌여주신 호박죽을 가져다 드리러 갔다. 외할머니곁에 같이 조반을 나누셔야할 외할아버지의 빈자리엔 이제 노인이 되어가는 외삼촌만이 계셨을 뿐이다. '살려고 하는 그 마음, 그 마음만 쉬게 하여라' 바쁘게 살아가는 나에게도 그분은 말씀하셨다... (작년 여름, 산보를 나가다 마주친 낯선 할아버지, 나의 외할아버지가 떠오르며...)
이랑Spirit
2005-04-16 0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