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북
25년 전 1980년 4월 21일은 사북광업소 동원탄좌의 광부와 광부가족 6천여명이
어용노조의 임금협상안에 격분하여 들고 일어난 날이다.
당시 동원탄광은 70년대의 오일 쇼크로 인해 엄청난 호황을 누렸음에도 불구하고
광부들의 임금은 최저생계비의 60% 수준인 15만원 정도만 지급했다.
게다가 회사는 광부들이 캔 석탄의 양을 20% 정도씩 줄여서 측정하는 교묘한 방식으로
수당을 착취한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으니 광부들의 분노는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전두환의 신군부에 의해 장악된 언론은 불순 세력의 난동, 노조위원장 부인에 대한 린치 등의
부정적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방식으로 광부들의 절규를 왜곡하였으며, 군부와 경찰은 협상의 약속을 깨고
사태 진압후 주모자 색출이라는 명목으로 광부들과 부녀들을 잡아 가두고 고문으로 인권을 유린하였다.
이른바 [사북사태]가 만들어진 것이다.
당시의 항쟁에 참여한 광부와 부녀자들은 자신들에게 일어난 이 일을 두고
지금에 와서 민주화 항쟁이라고 '거룩하게' 포장 하는 것 조차 겸연쩍게 여기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자신들은 그저 인간으로서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정당한 요구를 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비록 광부들이 민주화에 대한 정교한 역사인식이 없었다 하더라도 회사측의 부정부패에 맞서
싸우고, 또 그로 인해 가혹한 고난을 받았으므로 역사적으로 그들을 평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이제는 사북항쟁으로 인해 고통받은 광부들과 그 가족들의 명예가 속히 회복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