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그 자리엔 아무도 없었다 2003년 6월 작전참모부로 발령이 나기전 마지막으로 맡았던 소초생활은 그리 편하질 못했다. 워낙 대원들을 엄하게 다스려오던터라 그들의 고충과 어려움 또한 이루말할 수 없었다. 소초장이나 소초생활을 해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늘 그당시에는 경계할 엄청난 섹터에 비해 시간, 물적, 인적 자원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두번에 걸친 고된 훈련과 검열을 마치고 난뒤 소초로 복귀하기전 난 그들의 모습을 사진속에 간직할수 있었다. 이 마지막 검열을 통해 이제 난 지겨운 우도의 부중대장 생활과 소초장 생활에서 벗어날수 있었다. 그때의 그 기분을 어떻게 표현하랴. 하지만 난 이들을 남기고 떠나야 했다. 비록 그들에게도 엄격했던 나의 지도에 대해 불만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소초에 부임하자마자 FM으로만 밀고나가는 스타일을 누가 쉽게 따를수 있겠는가. 지겨운 무인도에서 부중대장 생활하던 나에게 인사명령이 난 것은 2002년 말이었다. 어떤 소초에 사고가 났는데, 급하게 소초장 자리를 메꾸라는 것이다. 그 당시만해도 지겨운 무인도에서 벗어나고 싶었는데, 다시 소초로 들어가라니. 나로써도 암담했다. 인사과장을 대면하고 그 사정을 듣고나서 나는 일명 땜빵으로 들어간 것이다. 이유를 불문하고 엄격하게 이끌라는 것이다. 그렇게 소초생활은 시작되었고 무인도생활만큼 길지는 않았지만 내 추억에는 길이 남을 소초생활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대원들을 많이도 혼냈고, 많이도 교육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대원들의 심정을 누가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전방에서는 일어나는 일들 자체가 그리 쉽게 해결하고 풀수 있겠는가? 문제가 있었던 소초에 들어가는 것 만큼 그렇게 쉽게 마음을 놓고 생활할수도 없는 노릇이다. 늘 어둡고 깜깜한 골방에 틀어박혀 지내면서 늘 긴장속에서 잠을 헤매야 했던 것이 기억난다. 어떤 일이든 쉽게 넘어가는 법이 없었고, 무엇이든지 꼼꼼하게 일을 처리했다. 소초장이 워낙 FM이다 보니 얼마 지나지 않아 인근소초에서 우리 소초가 가장 빡세다고 소문이 나기까지 했던 것이다. 그때 생각해보면 대원들은 많이 힘들어했다. 그럼에도 대원들은 나를 잘 따라주었다. 그러기에 미안했다. 그들도 나와 마찬가지로 바다를 바라보며 외로움의 시간을 참아내야 했기 때문이다. 그후로 1년뒤 제대하게 되었다. 다시 그 소초를 찾아갔을때는 이미 다른 중대와 경계작전교대를 마친 뒤였다.
이랑Spirit
2005-04-01 1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