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식 커피집에서
말도 제대로 안 통하는 그곳에서
지뢰로 팔다리 잃은 이들이
삶마저 잃어서는 안된다고 버둥대다가
진이 빠져 허한 바람이 가슴팍을 지나거나
고향생각에 축축해지면
프놈펜 시내 '프사 루시' 공구 시장을 한바퀴 돌다가
한구석 커피집에 가 앉곤했다.
눈으로는
꼬칼처럼 생긴 면 주머니를 사기 주전자 안에 받쳐 넣고
그안에 커피 가루를 한주걱 퍼붇고
설설 끓는 가마솥을 열어 한 국자 가득 퍼서는 주전자 안에 붓고
무럭 무럭 올라오는 김을 뚜껑으로 눌러 닫고
뜸을 드렸다가
베트남식 유리잔에 찰랑찰랑 부어내는
아주머니 손놀림을 물끄러미 따라가면서도
속으로는
어디에 구멍이 나서 속이 다 빠져 나갔는지
어디가 터져 이렇게 질척거리는지
어느 구석에 무져둔 것들이 그리 다 타들어갔는지
몇일 몇주 돌아보지 못했던
마음자리를 들여다보곤 했다.
'프사 루시' 공구시장 한구석에
베트남식 커피집이 있는건
마음자리 수선에 필요한 연장들을 찾는 이들이
적지 않은 탓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2002년 9월 프놈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