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식 커피집에서 말도 제대로 안 통하는 그곳에서 지뢰로 팔다리 잃은 이들이 삶마저 잃어서는 안된다고 버둥대다가 진이 빠져 허한 바람이 가슴팍을 지나거나 고향생각에 축축해지면 프놈펜 시내 '프사 루시' 공구 시장을 한바퀴 돌다가 한구석 커피집에 가 앉곤했다. 눈으로는 꼬칼처럼 생긴 면 주머니를 사기 주전자 안에 받쳐 넣고 그안에 커피 가루를 한주걱 퍼붇고 설설 끓는 가마솥을 열어 한 국자 가득 퍼서는 주전자 안에 붓고 무럭 무럭 올라오는 김을 뚜껑으로 눌러 닫고 뜸을 드렸다가 베트남식 유리잔에 찰랑찰랑 부어내는 아주머니 손놀림을 물끄러미 따라가면서도 속으로는 어디에 구멍이 나서 속이 다 빠져 나갔는지 어디가 터져 이렇게 질척거리는지 어느 구석에 무져둔 것들이 그리 다 타들어갔는지 몇일 몇주 돌아보지 못했던 마음자리를 들여다보곤 했다. '프사 루시' 공구시장 한구석에 베트남식 커피집이 있는건 마음자리 수선에 필요한 연장들을 찾는 이들이 적지 않은 탓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2002년 9월 프놈펜
길벗태진
2005-03-29 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