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 jap과 Pro job의 경계
홍순복 선생님
인천 경우회 회장 역임
1941년 양정고등학교 졸업후 면서기로 일하시다가 조정팔이라는 순사에게 억울하게 뺨을 맞은 뒤 순사 시험에 응시 수석합격함.
1941년 종로 경찰서에서 외근수사 일을 처음으로 1945년 9월 부터 이천서 경무주임, 안성 사찰 주임,
1945년 해방 당일 해방 사실을 모르고 출근, 이후 건준을 도와 치안활동.
1950년대 경찰 퇴임 후 반공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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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직후 맞아 죽은 사람은 Pro jap이고...
지금까지 살아 있는 사람은 Pro job이다..."
친일 문제로 시끄러운 요즘...
일제 시대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궁금한 것이 하나 생겼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지금이야 당연히 바른 선택을 하겠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지만...
그 때의 바른 선택은 지금과는 다를 수도 있기 때문에...
난, 아마도 pro job을 택했을 것이다...
개인주의가 강한 나는 민족보다는 나 자신의 먹거리와 자식들을 생각해서라도...
뒷날 '누가 나를 비난 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은 전혀 하지도 해야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한 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