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에 본격적으로 살러 가기 몇 개월 전
시엠립에서 일하는 선배 L형을 만나러 처음 갔을 때
선배는 다짜고짜 '넌 예술가니까 여기는 꼭 가봐야 한다'며
바쁜 일 다 접어둔 채
윗사람 눈치도 아랑곳 않고
오토바이 택시를 대절해서는
날 '반티 스레이'라는 곳에 데려갔다.
이름 그대로 '여인들의 사원' 다웠다.
외진 곳에 아담한 크기로 세워진 이 사원은
들어서는 순간 엄마 품에 안기는 듯 포근하고 다감했다.
종이를 가위로 오려 붙인 듯 정교한 사암 부조며
말을 걸면 걸어나올 듯한 조각들에 한참을 넋을 놓고 있다가
문득 내가 감상하는 데 방해가 될까 봐
자기 자동카메라를 슬그머니 내 손에 쥐어준 채 사라진 선배 생각이 났다.
사원 이곳 저곳을 두리번 거리다
난 역시 선배보다 한 수 아래임을 절감했다.
선배는 그새 사원의 허물어져가는 한쪽 구석에서
기념품이며 관광엽서를 팔러 나온 동네 아이들과 신이 나게 놀고 있었다.
내가 천년 전의 돌 조각에서 캄보디아의 문화와 역사를 읽었다고 우쭐하는 동안
선배는 영양실조로 검은 물이 빠진 아이들의 머리칼,
그리고 기념품이며 엽서 파는 것을 잊은 채 놀이에 열중하는 아이들의 천진한 눈을 통해
가슴으로 캄보디아를 만나고 있었다.
2000년 7월 캄보디아 시엠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