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1 2005년 2월 "이주만이 살 길이다" 나는 재개발 문제에 관해서는 일단 한걸음 물러나서 바라보게 된다. 객관적으로 바라본다는 의미가 아니라, 단지 내가 직접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그 문제에 관해서는 가타부타 이야기를 할 주제가 되지 못한다는 생각인 것이다. 요즘 세상을 시끄럽게 만들어 가는 문제 중에서, 어느 일방의 주장이 전적으로 옳고 상대방의 주장은 전적으로 잘못 되었다는 논지는 타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모두 정도의 차이일 뿐이지, 나름대로의 장단점이 모두 존재하는 문제일 테니까... 어줍잖게 몇 년 배운게 법이라고, 가끔은 얇팍한 전공지식으로 답을 구하려는 무모한 시도를 해본다. 건물 소유주들은 모두 보상을 받아서 떠나갔고.. 단지 남아있는 사람들은 임차인들이고.. 그들은 임대차보증금을 돌려받으면 문제가 해결되... 는... 건가...? 그런데 임차인들의 "그들의 살 길"을 주장하며 동분서주하는 모습은 또 다른 문제가 상존해 있음을 내게 보여준다. 문득 대학교 입학 전에 교수님과 면접의 시간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교수님께서는 아무 생각 없이 점수가 어중띠게 맞아 떨어져서 법대에 지원한 고등학생들에게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셨고... 학생들은 천편일률적으로 "정의로운(!) 법률가"가 되겠노라고 공언했다. 그들의 확신에 찬 대답과 동시에 "왜 법과 정의를 동일시하는가?!"라는 교수님의 냉소는 우리를 지배했고, "오히려 법이 가장 부조리한 혹은 정의롭지 못한 것이지는 않을까?"라는 너무나도 새로워서 당혹스러운 문제를 제기하셨다. 누군가가 벽에 써놓았다. - "이주만이 살 길이다." 내 얼굴에 냉소가 번지는 것을 느꼈다. 네가 언제부터 딴사람 살아갈 길을 걱정해 주었는가?! 정녕 오로지 그것만이 그들의 살 길이라 생각하는가?! 실실 쪼개는 나의 냉소만으로는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에 다시 원론으로 돌아가본다. 이런 문제가 한두번 있던 것도 아닐테고.. 그러면 이들 임차인에게도 어느 정도의 보상금이 지급될텐데.. 분명 그런 법률이 있기는 할텐데.. 보상을 해준다고 해서 무턱대고 이들이 원하는 바를 다 들어줄 수는 없을 노릇.. 서로 당신들의 머리를 닮아서 내 머리도 좋을 것이라는 부모님의 주장이 무색해진다. 나의 그 좋은 머리.. 여기서 그만 회전이 멈추어 버린다. 나쁜 머리를 탓할 생각은 않고 책임전가에만 급급하다. 재빨리 핑계거리를 만들어낸다. 언젠가 한 선배가 했던 말... "법이 그리 대단하다고 생각하니? 법.. 아무 것도 없어.. 그거 국회에서 만들잖아.. 다 정치꾼들 장난이야.." 이럴 때에는 가끔 부모님 덕을 좀 본다 싶다. "뭐 찍는거야..? 나좀 찍어서 신문에 좀 올려.. 학생.." 어느 아주머니의 다급한 호소를 외면하고 쌩뚱맞은 폐가들만 찍는다. 너무 치졸하고 부끄럽다. 다들 행복한 명절이라 웃고 떠들고 행복해하는 그 날.. 세상의 다른 면을 보았다. 이 곳은 행복도 없었고 명절도 없어 보였다. 이들의 살 길... 어디로 간 것일까...? 순간 우직하게 외면해버린 덕택에 그 녀석이 어디로 갔는지는 다행스럽게도(?) 모르고 돌아왔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그들의 살길.. 그 곳에는 없다는 것이다.. 그 곳에 있던 그들의 살길을 누군가가 앗아갔다는 것이다. 순간 저 벽의 문구가 무섭게 다가왔다. 섬뜻한 협박 한구절... 몇 일 후면 법학도의 길을 마치는 지금..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우리들의 정의로웠던 학생들은 모두 어디로 간 것일까.. 이촌동 konica c35 tx / epson 1670p
낯선 그리움
2005-02-18 0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