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매물도 사람들 #10 (끝)
소매물도 사진 몇 장 마칩니다.^^
다음은 또 어떤 사진을 찍게 될지 올리게 될지 기대됩니다.
레이에서 많은 걸 배우고 있습니다.~
사진은 모두 베사 R 35 1.7 Ultron 으로 찍었습니다.
================ 여행기 ===================
열흘간의 정기휴가가 주어졌다.
어디로 가야할까? 가긴 가야 하는데...
왜 꼭 가야 하느냐고 이제와 다시 물으면 뭐라고 답해야 하나?
우연히 본 소매물도 사진 한 장이 나를 그곳까지 이끌었다고 할 수 있을까?
뻔한 생활속에 지친 나에게 새로운 활력이 필요했던 것일까?
떠날때는 말없이 아니 아무생각 없이 떠나게 마련인지?
인생자체가 여행이니 여행을 떠나는 건 살아간다는 의미일지니...
매번 보던 푸르고 탁 틔인 동해안에 질려서
지난 번 갔던 여름 제주 생각이 간절해서
아무도 살지 않는 조그마한 섬 마치 방드르디..에 나오는 스페란자 섬같은
그런 낯선곳에서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만 같아서...
섬이라곤 제주도 밖에 몰라서 우리나라에 섬이 3000개나 있다는데,,,
여행은 가보기 전에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이미 다녀온 곳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이전의 기억일 뿐이다.
익숙한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서 떠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위해 혹은 예전것의 재발견을 위해 떠나는 것일테다.
사전에 정보를 가지고 가는 것 사진으로 영상으로 보는 느낌
교통편 날씨 숙박정보 등등 아무리 많은 정보를 가지고 간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여행을 끝내고 돌아와서 얻는 것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조그만 섬마을 노부부의 담뱃내 나는 누런 백열등 전짓불 켜진 방에서 듣던
그 이야기들을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미처 상상조차 못하기 때문이다.
1. 여행출발
속초에서 서울로 향한다. 차가 막혀 5시간이 걸린다.
가슴아프다. 만나기로 한 사람들이 1시간이 넘게 기다린다.
둘째 날 7시 20분 전주행 버스를 탄다.
통영에서 소매물도 들어가는 배는 7시 11시(주말에만) 2시에 있는데
2시까지 통영으로 바로 가는 차편이 없다.
진주까지 가서 거기서 통영가는 걸로 갈아탄다.
서울-> 진주 (3시간 30분) 18500원
진주-> 통영 (1시간 30분) 5800원
통영-> 소매물도(1시간 30분) 13500원
아침 7시 20분에 출발하여 4시가 다되어 소매물도에 도착했다.
그전에...
소매물도에 들어가기 전에 충무김밥(충무는 통영)을 먹는다.
약간 된 밥에 김을 돌돌 말아서 오징어 무침과 오뎅졸임 그리고 우거지 된장국과 함께 나온다.
독특한 느낌과 맛이었다. 전에도 먹어본 적이 있으나 이번에도 역시나 당황스러웠다.
말 그대로 김+밥 이다.ㅎ
소매물도에는 편의점이 있을리 없다. 조그마한 수퍼가 하나 있긴 했다.
그러나 비쌀테고 물건도 한정되어 있기에 미리 먹거리를 준비해가는 것이 좋단다.
민박집에서 밥을 해주는 경우도 있다지만 안그러는 경우도 있단다.
그래서 햇반과 즉석국 그리고 라면 참치 등 4끼 기준으로 먹거리를 준비해갔다.
tip/ 여객터미널을 바라보며 우측에 농협 하나로 마트가 있다. 싸다.
먹거리를 사들고 소매물도로 향한다.
1시간 30분의 항해...바다인데 온통 섬밖에 안보인다. 너른 수평선이 없다.
신기신기...
매물도에 내려서... 어디에 묶을 것인가?
소매물도에는 다솔산장이라고 유명한 곳이 있다.
나는 전혀 모르고 있었지만 찾다보니 인터넷 홈페이지도 있다.
지금은 비수기라 예약이 필수는 아니지만 하면 좋다.
여름엔 필수다
20여명이 거주하는 조그마한 섬에 여름 성수기땐 하루에 500명이 온단다.
좁은 골목길에 사람이 미어터진단다. 놀라운 일이다.
그 조그마한 섬이...
내와 함께 내린 관광객은 5명 즈음?
배가 내리자 몇몇 할머니들이 민박하려나고 나즈막하고 수줍게 물어오신다.
육지처럼 큰소리를 칠 필요도 없다. 그냥 스윽 한 번 물어보신다.
2박에 3만원으로 결정을 보고 민박집을 향했다.
어떤 곳인지 딱히 물어보지는 않았다.
한눈에 보기에도 다 그만그만한 집들이다.
한몸 누울수만 있으면 되니까...
샤워는 가능해요? 뜨거운 물은 잘 나와요? 침대방이예요? TV는요? 등등의 질문은 아예 하지 않는다.
민박집은 돌과 흙으로 바람벽을 한 집이었다. -> 소매물도의 모든집이 이렇다. (다솔산장 빼고)
나무로 아궁이에 불을 때고 가마솥에 물을 끓이며 백열등 세개와 TV하나가 전기제품의 전부였다.
'그래 바로 내가 원하던 방이야... 낙도에 오면 이런 맛이 있어야지' 하는 그런 흥분을 느낄 필요는 없다.
그게 당연한거니까... 그들의 삶이 그러하듯이.
피곤했지만 등대섬을 보기 위해 등산을 한다.
정상이 150m쯤 되는데 육지의 150m와는 좀 다르다.
육지는 평지도 이미 어느정도의 해발고도를 가진데 반해 여긴 섬이니까.
힘이 든다.헥헥...
멋진 소매물도 등대섬이 보인다.
물길도 열려 있다.
건너가보고 싶지만 내일도 있으니...
다시 민박집으로 돌아온다.
가마솥에 데운 따신물로 씻고 햇반에 북어국과 참치로 저녁을 해결한다.
옆방에서 들려오는 노부부의 이야기 소리와 누런 백열등 불빛이 내방을 은은하게 채우고 있다.
나무때는 집에서 나는 그을음냄새와 돌담넘어 찰싹이는 파도소리도 평화롭다.
12시에 온섬의 전기가 끊긴다는데 그전에 잠든다.
2 다음날
사실 첫날을 보내고서 약간 당황을 하게 된다.
섬이 무척이나 작은 것이다.미리 생각은 했지만,
게다가 섬의 대부분이 바위 암반 지형과 숲이라 아예 다니지 못하는 곳도 많다.
사람들이 거주하는 섬의 북서쪽은 범위가 무척작다.
등대섬을 제외하면 그다지 볼 것도 없다.
민박집 할머니가 뭐 특별히 하는 일 없는 나를 보시고
종종 '심심하제~?'라고 물어오신다.
심심하면 하룻밤 자고 오늘배로 가라고도 말씀하셨다.
하룻밤을 자고나서도 아직 잘 모르겠다.
'그냥 확 오늘 3시 30분 배로 떠날까...?'
섬도 봤고 등대섬도 봤고 섬의 사람들도 봤기에 볼 건 다 본거니까...
느즈막히 일어났다.8시쯤
주민들이 거주하는 곳이 약간 서북향이라 아침 해가 늦게 든다.
햇반등등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마을을 어슬렁 거린다.
이리저리 사진도 찍어보고 마을 풍경을 즐긴다.
마을은 정말 하나하나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고 손으로 만들어졌음을 알게 한다.
집은 대체로 돌로 쌓은다음 그 사이를 시멘트나 흙으로 메운형식이다.
지붕은 슬레이트나 양철이고 모두 1층이며 간혹 옥상이 있는 집도 있다.
집이 아니라 마을 공동 건물 같은 것이다. 무슨 회관 이런거
길은 시멘트로 포장이 아니라 발라져 있다. 바위가 많아서 길이 꼬불꼬불하다.
갑자기 사다리로 연결 되기도 하고 바위를 둘러 가기도 한다.
대문은 전혀 없으며 집은 모두 오픈형이다.
마당으로 길이 통과하기도 하며 방문은 항상 열려 있다.
지금은 20여명의 주민이 거주하는 터라 모두가 말그대로 가족같은 느낌이다.
그렇지만 서로가 똑깥은 건 아니다.
섬에 사람이 들기 시작한 뒤로 인심이 조금씩 나빠지고 있다고 했다.
섬을 좀 둘러 보는데 어떤 아저씨가 부른다.
어제 나와 같이 섬에 들어온 관광객 아저씨다.
배타고 섬을 둘러보러 가는데 같이 가자는 것이었다.
혼자가기 모해서 나를 찾고 있었는데 마침 눈에 띄었단다.
기암절별 동굴등이 신비로웠다.
이런 일반적인 효도관광분위기를 느끼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가볍게 섬을 둘러보아서 색다른 맛이었다.
1시간쯤 섬을 둘러보고 다시 섬에 내려서 아저씨와 등대섬 구경을 갔다.
힐 하우스라고 폐교를 꾸며서 숙소로 운영하는 곳인데.
실은 난 여기서 자려고 했는데 전화를 받지 않아 예약을 못했다.
그런데 가보니 겨울철엔 장사를 안하는 듯 했다.
사람도 없고 문도 잠겨 있고,,, 단체 숙박용이라 혼자 잤으면 좀 이상했을 법하기도 했다.
그곳에는 바다를 내려다보며 탈 수 있는 그네도 있었다.
잠시 둘러보다가 아저씨가 지나가는 말로
'혹시 내가 같이 가자고 해서 방해가 안되는지 모르겠네...'이런 말을 하셨다.
좀처럼 듣기 어려운 말인데, 색다른 느낌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대학교 1학년인 아들이 있는 아저씨였다.
법대 나와서 사시 준비하다가 대기업 다니다가 나와서
사업을 시작했고 다행히 사업이 잘 되어 아버지와 형이 하던 기업이 쓰러졌을때도
꾿꾿하게 버텼다고 하셨다. 핸드폰과 pdp 그리고 섬유쪽 무역업을 하신다고 했다.
직장암 초기 진단을 받고 수술하기 전에 바람쐬러 가족 허락맡고 혼자 오신거란다.
집은 서울이고 회사는 대구에 있고...
첫번째 부인과 사별한 뒤 자주 찾던 강원도 이야기
10여년간의 외국 주재원 생활
아이들 이야기
그리고 집안 이야기
거기에 젊은 이에게 도움이 될만한 인생의 경험들도 들려 주셨다.
그 아저씨와 뒷산 곳곳을 누비고 다녔다.
약간은 위험한 곳까지...
난 좀 더 둘러보다 산을 내려왔는데.
선착장에서 또 아저씨를 만났다.
온동에 사람들이 다 달라붙어 선착장 공사를 돕고 있었다.
지난 태풍 매미에 선착장이 부서졌는데 이제 마무리 공사를 하고 있었다.
놀라운 건 마을 사람들은 일당을 받고 일하는 게 아니었다.
단지 마을일이니까 거드는 것이었다.
공사 인부가 두 명인가 있었지만...
나도 삽질하고 물도 나르고 도와 드렸더니
초쿄파이와 사이다를 주신다 . 섬에서는 귀한 것이다.
일을 대강 마치고 난 다시 등대섬으로 향했다.
2시 30분즈음 서서히 물길이 열릴 때라고 하셨다.
또 힘겹게 산을 넘어 등대섬으로 향했다.
등대섬에는 등대지기 아저씨 한 분이 계셨다.
관사에 찾아가서 몇마디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하소연하고 싶은 일들이 많으신 것 같았다.
관사 신축문제로 항만 관리청과의 불협화음고 있고
- 관사를 너무 크게 지었다고 한단다. 사실 혼자 생활하는 등대지기라고
조그마한 방하나만 쓸수도 없고 가족과 떨어져 지내기에 종종 가족이 방문하면 같이 지낼 생각으로 조금 넉넉하게 지었다며
섬에 나무 계단 설치건에 관해서도 환경부의 제제가 있단다.
-나무 계단에 3cm의 홈이 있어야 한단다. 그래야 그 밑으로 풀이 자랄 수 있다고 그런데 시행단계에서는 아무말 없다가 이제와서 제제가 들어왔단다
등대섬의 접안시설은 굳이 필요 없는데 해상 관광회사에서 로비를 넣어
섬에 관광객을 내릴 수 있게 하려한다고,,, 문제는 관광객들이 버린 쓰레기등등도
모두 등대지기의 몫이란다.
화장실부터 해서..모두...
섬엔 물도 부족하고 한데 사람이 많이 오면 그런 것 처리하는데도 큰 일이란다.
돌아서는 뒷모습이 쓸쓸해 보였다.
그렇게 이야기를 듣고 등대섬 구경을 좀 하다가 이제 다시 물길을 건너 되돌아 오려던 참인데...
(물길은 때에 따라 열리는 시간이 다른데..요즘은 3시즈음 완전히 열리고 1시간 30분정도는 계속 열려 있다.)
마침 오전에 탔던 보트 아저씨가 오는 게 아닌가, 등대섬에 물건을 나르러 왔었다.
다시 산을 넘어 갈 생각을 하니 막막해서...사실 힘들다 ㅡ.ㅡ.. 그냥 덥썩 태워 달라고 했다.
나중에 배삯 5000원 달라고 수줍게 말씀하시길레 사실 돈이 없기도 하고 해서...
다음번에 올때 드린다니 그냥 그걸로 더 안 물으신다.^^
그런데 사실 배타고 오면서 10분정도였지만 배가 작아서 파도에 무척 심하게 흔들렸다.
조류와 파도가 겹치니 대단했다. 무서워서 바이킹도 못타는데 ㅡ.ㅡ...
파도 뒤집에 쓰고 죽을 뻔 했다. 바다에 빠지면 옷부터 벗을 준비까지 했다..
카메라는 버리지 말아야지 하면서..ㅎㅎ
민박집 할아버지의 밤이야기.
저녁을 먹고 내가 심심해 하는 것이 보였던지
-사실 밤에는 길이 어두워 다나니기 어렵다. 다닐만한 곳도 없다.
다닐만한 곳엔 가로등도 없다. 마을엔 가로등이 5개쯤?
할머니가 방에 들어와서 TV라도 보라신다.
무툭툭해 보이던 할아버지도 이래저래 이야기를 꺼내신다.
내가 속초에서 왔다고 하자 할머니도 관광차 설악산엘 다녀가신 적이 있나보다.
그곳은 살기 좋제? 라고 물어보시기도 하고...
할아버지는 예전에 오징어배를 타실때 주문진까지는 와보셨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본디 섬에서 나고 자라셨는데 아버지가 7살때 돌아가시고
지금 살고 있는 집은 17살때 삼촌들과 함께 지으셨다고 했다.
방 두칸 부억하나짜리 흙돌집.
5남 1녀 모두 이곳 소매물도 초등학교를 졸업했고
지금은 모두 육지에서 산다고 하셨다.
예전엔 해산물을 팔아서 혹은 할아버지가 어업을 통해서 살아갔는데,
-사실 지금도 할머니는 물질을 하신단다.
지금은 민박의 비중이 오히려 크다신다.
여름철에 이 작은 섬에 500명씩 왔다간다니...상상이 안갔다.
다른 집까지 방이 8개가 있다는데 그때는 매일매일 누가 왔다 가는 줄도 모르는 정도란다.
-비수기때 가면 이런게 행복이다. 한가하고 조용하게 민박집 할아버지와 이야기도 나눌 수 있고...
성수기때는 또 시끄럽고 무척 바쁘다고 하신다.
방 청소도 매일 하고 빨래도 빨거나 널어야 하고
민박은 모두 예약제인데 전화걸어서 은행에서 입금 확인해야 하고
-통영관광관련 사이트에 소매물도에 있는 5개 정도의 민박집이 소개되어 있다.
돈버는 재미에 그나마 하신다고 하지만 힘들고 재미없는 일이라고 하셧다.
또 섬생활이 갑갑해 통영 시내에 셋방을 하나 가지고 계시단다.
한달에 두 번 4일 정도씩은 육지에 머무른다고 하셨다.
자식집에 들르거나 병원에 가거나 육지 친구들을 만나거나 할때 종종 이용하신단다.
그렇지 않으면 매일 섬에만 있으면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으시단다.
여름철만 빼면 섬에는 외로움이 감도는 것 같았다.
그래도 생활비가 많이 들지 않아 큰 벌이가 없고 자식에게 손벌리지 않아도 생활이 되신단다.
전기세-마을 자가 발전 (무료)
수도세-마을 공동 우물 (무료)
난방용-땔깜 이용 (무료)
그래서 배에 들어가는 기름과 전화비정도 그리고 5000원정도 되는 국민연금 등만 있으시면 된단다.
배에는 어업용 면세유가 나오는데 이게 양이 한정되어 있어 좀 아껴서 쓰신단다.
가끔 관광객 섬일주 해상 관광 시켜주거나 낚시꾼들 포인트로 이동시켜줄때 주로 이용하신단다.
흑 너무 길어져서 요약 모드로...
매물도에는 약간 큰배 50t급이 2척 작은 배 10t급이 3척
지난 매미때 350만원짜리 배가 난파
정부지원금 500받아 1500짤리 배 구입 - 할아버지 부자시다.
남의 술 한잔 얻어먹으면 3잔 사는 성격
친구들중에 매일 얻어먹는 놈도 있어 세상이 내맘같지 않다고 하심
경우틀린 거 못참는 성격, 마을에서도 환영 못 받는 경우 종종
공기좋고 건강하고 싱싱한 먹거리 있어 살만함
날씨가 궂으면 어디 나갈일도 없어 답답하고 쓸쓸함이 더함.
서울 현대인의 표본과
그 극단에 서 있는 섬마을 할아버지의 삶을 동시에 접하고 나니
묘한 느낌이었다.
동시대에 다양한 삶이 공존한다는 것.
다음날 8시 배를 타고서 섬을 떠나왔다.
아침에 조금 일찍일어나서 섬사람들께 인사도 좀 하고 마침 민박집 할머니가 병원에 가신다 하여 같이 나오게 되었다.
통영항에 도착해서 좀 고민을 했다. 사실 오늘 일찍 서울로 올라가기엔 뭔가 아쉽기도 하고,,,
기왕에 이 먼 곳까지 왔는데 통영 시내 구경이나 더 하기로 했다.
일단 근처에 있는 서호시장에 들렀다.
해산물들이 아주 종류가 많았으며 싱싱하고 값도 무척 저렴했다.
횟거리들도 난전에서 저렴하게 팔아서 두세명이서 5만원 어치 사서 회를 떠먹으면 배가 부를 정도였다.
다만 회를 떠서 먹어야 하니까...그게 문제지만...
배가 고픈탓이었던지 횟거리 2만원어치 사서 가져간 빅토리 녹스로 회떠먹을까...도 생각했다.
다만 마땅한 장소가 없어서 ㅡ.ㅡ..ㅎㅎ
대신 복국을 먹어보기로 했다. 복국가게가 몇 개 눈에 띄길레...
나중에 안내책자에 보니 충무김밥과 함께 복국이 향토음식 중 하나였다.
미나리와 콩나물국에 복어 삶은 하얀살이 함께 담겨 있는 것이다.
국물따로 복어 따로 느낌이 조금 났지만 복어 넣고 푹푹 삶은 것이었으면 더 좋았을텐데...
깔끔하고 시원했다. 그리고 복어살은 초장에 찍어먹었는데...삶은건데도 어찌나 쫄깃한지..
역시 복어였다.
그리고 배부르게 먹고 음식점 아저씨께 뭐 둘러볼 곳 없냐고 물으니 친절하게 가르쳐 주신다.
해저터널에 가보고 미륵도 일주 버스를 한 번 타보라고...
해저터널까지 500m쯤 걸어간다.
일제시대에 손으로 만든 거란다. 신기하게도.
아직도 사람들이 다니는 통로로 이용되고 있다.
그곳이 통영운하를 가로질러 만들었는데 조류의 흐름이 어찌나 세던지 무슨 강물이 흘러가는 줄 알았다.
그것도 장마때 강물...
동해에서 미처 보지 못하던 모습이라 무척 신기했다...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배들이 어찌나 안쓰럽던지..ㅎㅎ
그곳에서 강아지를 안고가던 아주머니와 같이 걸어가며 잠시 환담.
회사다니는 딸이 강아지를 맡겨서 하는 수 없이 키우고 있는데
개가 마침 다리가 부러져서 병원에서 깁스하고 오는 중이시란다.
마취가 덜 풀려 헤롱거리는 개를 안고 아주머니는 한마디 하셨다.
'개팔자가 상팔자라고'.ㅋㅋ
관광지라 그런지 혼자 다니는 게 불쌍해보였던지 이거저거 자세히 설명해 주셨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리고 '총각 왜 혼자 다녀요? 애인하고 같이 다녀야지...' 뭐 이런 이야기도 들은 것 같다.
따님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물어보려다 말았다.ㅋ
그리고 나서 미륵도일주 구경을 시도한다.
아주머니가 차타는 곳도 알려주시고 해서 또 물어물어 정류장까지 간다.
1시간마다 한대씩 있다는 차를 10분만에 타는 행운을 만난다.
그걸타고 미륵도(산양읍- 원래 섬이었는데 다리로 연결됨)를 둘러본다.
이곳은 통영시내와는 달리 또 완전히 시골 항포구였다.
양식하고 어업을 위주로 하는...
시골 아주머니들이 장에 물건 팔러 가는 모습하고 정겨운 기사아저씨와의 농담도 기억에 남는다.
중간에 버스를 한 번 갈아타고 이젠 통영 시외버스 터미널로 온다.
그곳에서 3시쯤 서울행 버스를 탄 것 같다.
서울까지는 4시간 30분이 걸렸다.
손가락을 다친후 왼쪽 가운데 손가락으로는 워드를 전혀 못치고 있다.
사실 노트북식 키보드는 가능할 것 같다만...
그래서 워드 타수가 급격히 줄어든데다 오타도 심해서 글을 적는데 시간이 무척 오래 걸렸다.
그래도 여행 후기에 소흘 할 수는 없는법이라...
좀 더 많은 이야기 많은 감정들이 꾸준히 이어지지만 그걸 다 글로 싣기는 어려운 법.
이 정도에서 여행의 이야기는 마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