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율씨의 경우 김형율씨의 경우 이미 패망의 기운이 짙게 깔려있던 1945년 8월의 일본. 난데없이 히로시마와 나가사끼의 하늘에 원자폭탄을 실은 B-29 라는 이름의 시커먼 괴물이 나타났다. 그날 그곳에서는 큰 굉음과 진동 그리고 큰 구름과 먼지가 일어났으며 종일토록 검은 비가 내렸다. 아홉살, 여섯살, 세살바기 딸을 거느린 합천 출신의 한 조선인 노무자가 히로시마에 살고 있었는데 그와 큰 딸은 피폭으로 인해 사망했고 불행 중 다행으로 어린 두 딸은 어머니와 함께 목숨을 건졌다. 해방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온 딸은 빈혈로 인해 늘 시달렸지만 성인되어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았다. 1970년생 신장 163센티 체중 37킬로그램의 김형율씨는 바로 그 딸의 아들이다. 김형율씨는 어릴때 부터 만성적인 폐렴증상으로 인해 고통을 받았는데 1995년에야 비로소 그의 병명이 선천성 면역글로불린 결핍이라는 X염색체에 의한 유전병임을 알았다. 끝없이 이어지는 천식과 각혈의 고통을 딛고 그는 요즘 <한국 원폭2세 환우회>라는 모임을 만들고 있다. 미군의 원폭 투하에 따른 피폭의 고통은 1세대에서 끝나지 않고 2300여명의 2세대에게로 유전되고 있기 때문이다. 2004년 국회를 통과한 [일제강점하 강제동원 피해진상규명 등에 관한 특별법]에서 원폭피해자들이 배제된 것을 보면 원폭의 고통이 과연 개인의 문제인지를 되묻게 된다. 만약 우리 사회와 국가가 그들의 아픔을 외면한다면 그것은 역사적인 오점이 될 것이다. 또한 비록 미국이 전승국이라고는 하지만 가공할만한 위력을 가진 원폭을 투하하여 대다수 민간인들에게 큰 고통과 피해를 안긴 것에 대해 전혀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다음까페 <한국원폭2세 환우회> http://cafe.daum.net/KABV2PO
화덕헌
2005-02-12 1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