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을 위하여 10
- 웅크림에 대하여 -
사람들은 따뜻한 곳을 좋아한다
볕이 좋은 곳. 등에 햇살을 받으며 자울자울 얇은 졸음을 맛보는 것.
마치 봄날 볕을 쪼이러 나오는 겨울을 무사히 났던 것들처럼.
여름날인데도 아이들은 볕을 좋아한다.
포도빛 얼음 알갱이가 들어있는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쥐고
고목의 가지마냥 앙상한 나뭇가지가 벽과 발 밑으로 깔린 곳에 웅크린다.
아이들은 서기보다는 웅크리기를 좋아한다.
그 옛날 따사로운 흙담 아래 우리가 기대고 있던 것처럼
아마도 자궁 속 기억이리라.
무엇인가 감추면서 보여줄 듯 보여주지 않은 모습으로
열달 동안 무사히 잘 견디고 나왔지만
세상은 그렇게 원만한 곳은 아닌 듯하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우울하거나 무서운 일이 생긱거나
편하지 않은 일이 있을 땐 종종 웅크리고 있길 좋아한다.
심지어 방에 앉아 대화를 나눌 때도 웅크린 자세가 편하다며
오래도록 웅크리고 있는 것을 본다.
무릎이 포개지면서 뼈마디가 겹쳐지면 아플텐데
잘 앉아있는 것을 보면, 웅크림은 자기 보호본능과 함께
'어머니의 아기집'으로의 회귀를 늘 소망하고 있음이 아닐까.
이승을 떠나는 자의 모습은 고요하다.
그리고 처음 나올때처럼 귀히 받들어져
순백의 모습으로 배냇저고리를 입고 손싸개와 발싸개를 하고
길을 떠난다. 어쩌면 늘 소망했던 곳으로 아니면 그 어떤 곳으로.
만약 죽은자에게 의지가 있어 어떤 모습을 소망케하냐면
돌아온 곳에서 있던 것처럼 웅크리지 않을까.
돌아온 봄날엔 흙담 있는 곳에 가서
따사로운 햇살 등에 쏘이며
자울자울 졸음에 취해보리라 마음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