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부석사에서
경북부석사는~~
왕명으로 창건한 사찰이다.
의상대사가 당나라에 유학하고 있을 때 당 고종의 신라 침략 소식을
듣고 이를 왕에게 알리고 그가 닦은 화엄교학을 펴기 위해 귀국하여
이 절을 창건, 우리나라 화엄사상의 발원지가 되었다.
그런데, 신라 화엄종의 도량임에도 불구하고 본전인 무량수전에는
아미타불을 주불로 모셨고, 무량수전 앞에는 안양문을 세웠으니
땅 위에 극락세계를 옮겨 놓은 격이 되었다.
"부석사"라 이름하게 됨은 무량수전 서쪽에 큰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는 아래의 바위와 서로 붙지 않고 떠 있어 뜬돌이라 부른데서
연유하였다고 한다.
1916년 해체 보수시 발견된 묵서명에 의하면 고려 초기에 무량수전
등을 중창하였으나 공민왕 7년(1358) 적의 병화를 당하여
우왕 2년(1376) 무량수전이 재건되고, 우왕 3년(1377) 조사당이
재건되었다고 적혀 있다.
경내에는 신라유물인 무량수전앞 석등(국보 제17호),
석조여래좌상(보물 제220호), 삼층석탑(보물 제249호),
당간지주(보물 제255호) 등이 있고 고려시대 유물인
무량수전(국보 제18호), 조사당(국보 제19호),
소조여래좌상(국보제45호), 조사당벽화(국보 제46호),
고려각판(보물 제735호), 원융국사비(도유형문화재 제127호),
삼층석탑(도유형문화재 제130호) 등이 있다.
특히, 무량수전은 봉정사 극락전과 더불어 우리나라 최고의 목조
건물이다.조사당 벽화는 목조 건물에 그려진 벽화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