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ily
이것은 2002년 12월의 이야기다.
그 때의 나는 12월의 무더운 햇살속에서 쿠알라룸프에서 태국 핫짜이로 향하는 버스에 있었다. 12시간에 걸쳐 핫짜이에 도착해 4시간반을 더가서 끄라비에 도착했고 다시 피피섬에서 몇 일을 보낸뒤에 푸켓의 빠똥에 도착했다. 태국으로 출발하기전 이미 싱가폴에서의 3박4일동안 너무나 많이 걸어다닌 덕분에 내 발등은 퉁퉁부어 올라 있었고 압박붕대 없이는 걸어다니기 힘든 지경이었다.
결국 빠똥에 도착한 첫 날 밤. 다 헤어져 버린 붕대를 다시 사기위해 약국을 찾아나섰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 휘황찬란한 환락의 거리를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길거리 여성들(혹은 남성들)의 유혹을 뿌리치고 길거리를 헤메이고 있을때 누군가 내 등을 손가락으로 살며시 두어번 쳤다. 나는 첫 눈에 반할만큼 매우 아름다운 그녀가 남자임을 알 수 있었다. 목소리를 꾸미기 위해 호르몬제를 투약 한것 같았고, 눈빛도 흐려져 있었다.
이것은 나와 그녀와의 이야기다.
나는 차마 그녀를 뿌리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와 섹스를 할 생각도 없었다. 그냥 호기심이었고 거부할 수 없었을 뿐이다.
emily는 치앙마이 출신이었고, 그녀의 이야기를 내게 해 주었다. 센토사에서 무용수로 일한 경험 덕분인지 그녀의 영어수준은 괜찮은 편이었다. 나는 그녀와 빠똥에서 친구로서 동생으로서(그녀는 나보다 한 살 많다.) 3일동안 그녀와 함께했다.
빠똥에서 떠나기 전날밤 나는 내 지갑속에서 몇장의 말레이지아 지폐와 조금 남은 태국지폐를 그녀의 손에 쥐어주었다. 그리고 한국와 말레이지아의 내 주소와 연락처를 주었다. 나도 그녀에게 연락처와 주소를 달라고 했지만 그녀는 더 이상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다.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말 할 수 있지만, 읽고 쓸 줄은 몰랐다.
아침에 빠똥을 떠나는 버스를 타고나니 눈물이 흘렀다. 그녀가 불쌍해서가 아니라 그녀를 이해할 수 있을것 같아서 눈물이 흘렀다. 그 눈물은 말레이지아로 돌아오는동안까지도 좀처럼 멈추지 않았다.
그녀가 지내던 빠똥에 해일이 일어났다. 나는 그녀가 다른 도시로 옮겼을지 아니면 그곳에 계속 있는지 잘 모른다. 그냥 나는 그녀가 무사하기만을 바라고 있을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