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을 위하여 7 은비를 두번째 만나는 날 찍은 사진이다. 일찍 간 것도 아닌데, 성진이만 자전거를 타고 놀고 있었다. 은비는 어딨냐고 물었더니 아마 공부방에 있을거라 한다. 워낙 비탈진 곳이라 차가 오르내리는 것만 봐도 힘겨워 보이는 동네. 공부방은 언덕배기에 지어져있는데, 동네 아이들은 그 곳 놀이터에서 자주 놀고 다른 동네 사람들은 그 위에 있는 산책로를 따라 산에 오르거나, 약수를 떠가곤 한다. 아이들의 놀이터는 특별히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동네 아이들은 궁색한 놀이터를 가졌다고 할 수 있다. 성진이더러 너는 왜 빨리 와 있냐고 하니 하얀 이를 드러내며 머리만 긁적인다. 아마도 가기 싫었나보다. 성진이와 은비는 매우 친해 보였다. 하지만 둘의 미소는 늘 활짝 피어있지 않은 채 반만 웃곤 했다. 마치 강렬한 빛이 얼굴에 비쳤을 때 찡그리게 될 때 지어지는 표정. 성진이와 은비를 찾아나서기로 했다. 사실 날이 더워 우린 스큐루바를 한개씩 물고 언덕길을 올랐다. 우리가 만나려고 했던지 은비는 우리가 가는 골목으로 오고 있었다. 나를 보며 살픗 웃어주는데 그마저도 반쯤이다. 사진에 보이는 뒷편은 은비네 집 앞이다. 다음에 만날 때 잊지 말라고 수첩에 전화번호까지 써주더니, 집까지 알려주었다. 나를 믿어준 아이들이 고마워 약속한 날에 갔고, 우린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이것저것 이야기하다 다음을 약속했다. 나도 어렸을 땐 사진 찍는 일이 싫었다.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주문도 많고 잘 웃고 있을 땐 안 찍다가 다른 짓할 때 찍어놓고는 바로 안찍는다고 야단까지 맞았으니까. 게다가 잘 놀다가도 사진을 찍는다고 하면 얼어붙어있을 때가 많았다. 그때만 해도 사진기를 들고다니는 사람이 없으니 더더욱 무섭게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은비도 집 앞인데도 얼었다. 이야기할 때 웃으면 꽃처럼 예쁜데. 이 사진을 보면 내 어릴 적 모습과 어찌나 닮았는 지 저절로 미소가 만들어진다. 마음 같아선 이대로 있었으면 좋겠는데. 엉성하게 서있지만 속은 떨고 있었을거다. 이것저것 뭐가 그렇게 궁금한게 많은 지 묻는다. 엄마 아빠가 밤 늦게서야 들어오니 할머니의 보살핌이 있다해도 부모의 보살핌만은 못할 게다. 부모는 맘 놓고 사회생활을 할 수 있고 아이들은 아이들의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고 공부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많이 만들어졌으면 한다. 유난히 코를 훌쩍이던 은비, 깔끔한 성진이와 달리 선머슴애같은 은비는 아마 얼굴이 꺼칠하게 타있을게다. 여름에도 그랬으니까. 보고 싶다. 어느 날 문득 가면 있을까. 방학 했으니.
알섬
2004-12-28 0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