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속의 산책
Photo By Skyraider
내가 하늘에 대해 동경을 가지게 된 것에 종교의 역할은 적지 않았다. 가장 먼저 배우던 주기도문조차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였으니까. 어린 시절, 세례를 준비하면서 외우던 기도문에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외울 때마다 이런 생각을 했더랬다. ‘울 아빠는 하늘이 아니라 바다에 계신데 왜 아버지를 하늘에 계시다고 외우고 있을까?’ 참다못해 수녀님을 붙잡고 질문을 했을 때, 성당마당 성모상과 닮아계시던 수녀님은 내게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셨다. 그가 나를 낳아준 아버지에게도 아버지고, 내게도 아버지가 된다는 ‘종교적’인 예를 들어주시면서.
정말 이해해서가 아니라, 분위기가 이해해야 하는 척이라도 해야 할 상황이 있다는 것을 나이든 이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물론, 거기서도 ‘그래도 저는 잘 모르겠는데요?’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겠지만 – 요즘 그런 사람들은 정직한 사람이 되지만, 예전에는 그런 행동자체가 튀는 것이거나 지진아로 취급되기 일쑤였다 – 나는 그렇게 하지 않고 이해하는 척 하기로 마음 먹었고, 무사히 모든 기도문을 외우고 세례를 받는데 성공했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천주교 신자셨던 어머니는 형과 나에게 유아세례를 받게 해주지 않으시고 어느 정도 나이가 든 다음 세례를 받게 해주셨다. 당연히 모태신앙이니까 알아서 성당에 나가게 하는 것이 아니라 교리에 대해, 그리고 믿음에 대해 어느정도 생각을 가질 수 있는 시기에 세례를 받게 하기 위해 그러셨던 것이지만 사실 결과는 마찬가지 였다고 느낀다. 초등학교 4학년이라는 때가 스스로 알아서 선택할 수 있는 시기는 아니었으니 말이다.
요즘 나는 성당에 나가지 않는다. 이율배반적인 얘기지만 나는 신은 믿되, 교회는 믿지 않는 이상한 상태에 빠져있다. 크리스트교 신자라는 이들의 손에 의해 전쟁이 벌어지고, 목사라는 이의 입에서 파병찬성이라는 이야기가 서슴없이 튀어나오는…사랑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칼을 쥐어주는 목자들만 그득한 지금의 교회를 나는 신이 베드로의 반석 위에 세운 교회라 믿고 싶지 않다. 아니, 믿지 않는다. 추기경의 입에서 ‘파병은 불가피’라는 말이 나오고 ‘국가보안법 폐지는 시기상조’라는 말이 나왔을 때,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아니, 믿을 수가 없었다. 오히려 영어로 통성기도를 하면서 한미공조를 찬양하고 파병을 찬성한 목사들의 망발은 용서할 수 있어도, 추기경이 한 말들은 목자로써 입에 담아서는 안될 말이었다, 정말 우리가 미국의 손에 끌려다니는 강아지 신세라 하더라도, 정말 세상이 간첩이 득실거리는 빨갱이 소굴이라 하더라도 그는 그렇게 말하면 안되는 것이었다.
어머니, 아버지께 아마 이번 주일에도 끊임없이 ‘함께 교회에 가자’는 얘기를 또 듣게 될 것이다. 하지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와 ‘바다에 계신 내 아버지’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끄덕이며 따라갔던 예전의 전철을 나는 밟지 않을 것이다.
(예전에 찍어둔 사진인데 아직도 올린 적이 없었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