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차에 대한 이야기
오랜만에 6호선 막차를 타고 집에 들어왔다.
예전에, 6호선을 개통한지 얼마 안되었을 즈음엔 종종 막차를 타곤 했었다.
친구와 함께 일때가 대부분이었는데, 안암까지 가는 6호선 막차를 간신히 잡아 타곤 했다.
학교 근처에서거나, 어디에서든간에 열심히 마시고 얘기하다가 문득 정신을 차려 막차를 향해 달리는 것이다. 가난한 학생인지라 택시라는건 정말 정말 정말 어쩔 수 없을때 타는 최후의 보루여서, 막차를 향해 정말 열심히 뛰었었다. 다행히도 나는 술을 마시면 힘이 샘솟는 타입이라 이럴 경우엔 꽤 잘 뛴다.
일단 안암까지 겨우 겨우 도착하면, 고대 근처에서 버스를 잡아타고 집으로 갔다. 그렇게 들어가면 보통 집안 사람들은 모두 자고 있고, 고양이처럼 살금 살금 들어가 조용히 씻고 잠들곤 했다. (예전 생각하니까 꽤 즐겁네. 하하...)
요샌, 그렇게 늦게까지 술을 마실 일이 거의 없을뿐더러, 술을 마셔도 다들 일찍 일찍 일어나기 마련이고, 또 너무 늦으면 종종 택시를 타기도 한다. (엊그제도 택시를 타고 집에 들어갔다. 삼촌과 시골에서 돌아와 근 12시까지 소주를 마시느라..)
오늘은 이야기가 늦게까지 길어지다 보니 결국 막차를 타게 되었는데, 몇가지 인상적인것에 대한 이야기.(이제부터 본론입니다.)
늦은 시간엔 보통 역 전체에 울려 퍼지도록 음악을 틀어 놓곤 한다. (일찍 일찍 귀가하는 분들은 절대 모르는 사실이죠!) 그런데 이 음악이 역마다 참 다채롭게 다르다. 아무래도 그날의 당직 근무자, 또는 역장의 취향에 따라 결정되지 않을까.. 싶다. (뭐. 그러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항상 정해진 스타일을 가지고 있는 곳이 몇군데 있다.
경복궁역 같은 경우엔 거의 국악이 흘러 나온다. 바로 옆 안국역은 세련된 음악(뉴에이지, 클래식 등의)이 흘러 나온다. 그에 비하면 신당역에선 항상 라디오 방송이 나온다. 방송 채널도 종종 바뀌곤 해서 갈때마다 종 잡을 수가 없다. 가요가 주종을 이루고, 가끔 고상야릇한 샹송 같은것도 흘러나올때가 있다. 남부터미널역은 클래식이 주류다. 아무래도 근처에 예술의 전당에 있는 까닭일까? 알 수 없지만, 근처 동네 분위기와 상통하는 느낌이 약.간.은. 든다.
오늘은 청구에서 지하철을 탔는데, 막차인지라 약 15분 여를 기다리는 동안 이사오 사사키와 베토벤이 흘러 나왔다. 평소 청구역의 이미지와는 많이 다른 선곡이라고 말하면 근무하시는 분에게 실례가 되려나..? 아무튼 좋았습니다. ^_^ 오랜만에 듣는 문..워커는 아니고 문.. 리버도 아니고,, 문... 어쩌고 앨범에 있는 곡이 몇곡 나왔다. -.-;; 베토벤도 정확한 곡명은 알 수 없지만, (클래식 곡의 제목은 왜 그렇게도 어려운거지.) 그저, '아.. 이거 베토벤이군.' 정도까지는 캐치 할 수 있었다.
지하철의 컬러마다 그 분위기가 꽤 달라진다.
1호선 막차 같은 경우엔, 차량 전체에 술냄새가 진동을 한다. 대부분 얼굴이 빠알갛게 달아 올라 있고, 운이 나쁘면 구토하는 사람을 만날 수도 있다. (그럴땐 조용히 옆 차량으로 도망간다.) 술냄새가 별로 나지 않는다.. 싶으면 고기 냄새다. 진하게 베어 있는 갈비 냄새.. 도대체가.. 술 한방울 마시지 않고 지하철을 타도, 내릴때면 취해버린 느낌이다.
하지만 6호선은 꽤 깔끔하다. 술에 취한 사람도 거의 없고, 있다 해도 조용히 잔다. 고기냄새도 나지 않는다. 욕지거리를 하며 주정을 부리는 사람도 없고, 토 하는 사람은 단 한번도 본 적이 없다. 신기한 노릇이다. 정차하는 지역이 술문화와 거리가 먼 까닭일까? 아니면 6호선 라인에 사는 사람들이 좀 얌전한 편인걸까? 알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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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그렇고, 요새 지하철 분위기가 참 따뜻해졌다. 막차라서 그런지 몰라도, 어떤 여자분이 급히 계단을 뛰어 내려왔지만 한 발 늦어 문이 닫겨 버리는 상황에서 공익근무요원이 다시 운전하시는 분께 신호를 보내어 문을 열어줬다. 따뜻한 광경이다. 이런 지하철. 정말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