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과 복음] fujifilm tx-2 가난한 사람은 잘사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돈과 안락한 생활을 부러워하는 반면에 부자는 자신이 갖지 못한 근심없는 생활을 부러워한다. 독신녀는 결혼한 여성을 부러워하고 결혼한 여성은 독신의 자유로움을 부러워한다. 아기없는 여자는 어머니의 기쁨을 누리는 여자를 부러워하고 반대로 어떤 어머니는 아이들 때문에 생기는 걱정거리와 수고에 대해서 끊임없이 불평한다. 평등하게 되고자 하는 열망이야말로 이 시대의 가장 깊고 심각한 병중에 하나다 어떤 소녀는 윤택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운명의 변화로 하녀가 되어 일하지 않을수 없게 되었다. 그 소녀는 울화로 병이 났다. 그러나 그녀에게 사랑의 표시라고 생각하여 수없이 "네가 어떻게 그런 비천한 일을 할수 있느냐?" 고 말해주는 선량한 사람들만 없었다면 그 소녀는 달라졌을 것이다. 사람들의 위로는 소녀를 보호해주기보다는 그녀의 생활에 대한 반발을 일으킬 뿐이었다. 사람들은 정상적인 생활을 해 나가기 위해서는 어떤 콤플렉스를 가져서도 안되며 어떤 정서적인 충격이나 고난이나 정신적 상처를 받아서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모든 행복이 모순과 고통없는 곳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부모는 아이들에게 평등의 정의에 대해서 그릇된 개념을 길러주고 있는데 그것은 큰아이건 작은 아이건 뚱뚱한 아이건 마른 아이건 각자에게 케이크를 똑같이 조심스레 잘라주거나 심통을 부리는 아이가 있으면 다른 아이도 같이 심통을 부리게 내버려두는것이다. 이렇게 되면 아이들은 불공평한 것 천지인 인생에 익숙해질 준비가 되어있지 않게 된다. 그들은 언제나 자신을 이웃과 비교해 보고 분통을 터뜨린다. 이것은 그들이 나중에는 사무실 공장, 군대, 정치기관등에서 생활하며 불신과 분열과 적의와 타오르는 복수심을 심어주는 불공평한 대우를 퍼뜨리는 삶을 살게 하는 빌미를 제공하는것이다. 성경속의 정의는 평등이 아닌 순종에 있다. 의로운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찾는 사람이다. 의로운 사람은 은혜로 말미암아 죄악에서 구제된 사람이다. 인간의 마음속에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정의가 이땅위에 오게 할수 있다. 성경은 분명히 이리가 어린양과 함께 거하며...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사11:6-9) 황금시대에 대한 꿈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런일들이 양이 불평함으로 이루어진다고 말씀하지 않는다. 현대의 정신은 자기 권리의 옹호 덕행을 베풀고 보상받지 못한일 자기가 당하는 부당한 일에 관심을 가진다. 기독교 정신은 자신의 무가치함과 자신이 받고 있는 과분한 은혜를 알고 불행에 처한 이웃들에게 손을 내민다. 당신은 지금 매표구 앞에 줄서 있다. 당신의 자리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조심스럽게 서있다. 이것이 바로 평등주의 원칙이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어떤 노인에게 당신의 자리를 양보한다면 그것이 바로 복음의 정의인것이다. [고독]중에서
디너
2004-12-11 0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