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 한 컵
아버지는 몇 십년 동안 거의 매일 소주 한병을 저녁에 드셨다. 소주 잔 같은 것은 없다. 커다란 물컵으로 대신하신다. 백세주 같은 것도 마다하시고, 소주같이 싸고 좋은 술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신다. 술친구도 없이 저렇게 몇 십년 동안 저녁에 집에 오시면 혼자서 술을 드시는 것을 보면 알콜중독인 듯 싶은데, 아버지 본인 스스로 중독인 것 같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보면 아직 중독은 아니신 것 같다.
어느 날 문득 돌아보니 술이 얼큰히 취한 아버지의 우직한 손이 눈에 띤다. 근대화를 위한 개발독재에 의해 착취된 그 손은 이제 초라하게 느껴진다.
생각해보니 나도 많이 컸구나. 이제는 한 두 장 있는 아버지의 젊은 시절 사진에서 깡 마른 내 얼굴을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