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사진의 힘을 믿는가? 고양이는 참 특이한 동물이다. 보는 사람의 감정을 투영시켜 주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슬픈 눈으로 고양이를 바라보면 한없이 슬퍼 보인다. 히데노리의 '내 집으로 와요'를 보면 미키오가 아야의 사진을 찍어 신인상을 수상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사진은 이별을 예감하는 연인의 모습을 냉정한 카메라맨의 눈으로 바라본 가슴시린 사진이었다. 카메라는 냉정하다. 찍는 사람이 대상을 어떤 감정으로 대하는가가 드러나는 것이 마치 고양이의 눈 같다. 앨범 정리를 했다. 이제는 옛사람이 되어버린 그녀와의 짧고도 길었던 3년간의 추억들을 정리해 나갔다. 추억을 회상하게 해줄 무언가가 없다는 것은 마치 시간을 도둑맞은 듯한 기분이 든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기에... 그녀가 자신의 스물 한살부터 스물 셋의 기억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그녀의 사진들만을 정리해 앨범을 만들기로 했다. 내 사진과 함께 있던 앨범에서 사진을 모두 때어내고 사진을 고른 뒤 새 앨범에 곱게 붙여 나갔다. 그 일련의 행위 속에서 나는 시간을 보았고 추억을 보았다. 사랑에 빠져들던 설레임과 첫 여행의 두근거림을 볼 수 있었다. 행복을 볼 수 있었고 같이 바라보던 꿈을 볼 수 있었다. 거기엔 사랑이 가득 담긴 눈빛이 있었고 사랑스런 몸짓이 있었다. 그리고... 이별을 준비하는 멀어짐도 있었다. 감정없는 눈빛과 거리감이 사진에도 나타나 있었던 것이다. 내가, 그녀가, 우리가 어떻게 변해갔는지 내 사진속의 그녀의 모습들이 말해주고 있었다. 잃어버린 것만 같던 시간의 공백이 내게 점점 채워져 왔다. 올림푸스의 광고 카피처럼 누군가 내게 "당신은 사진의 힘을 믿는가?" 라고 묻는다면 나는 그렇다고, 사진은 감정을 담는 도구라고 그에게 말 할 것이다.
pip
2004-12-06 2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