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새의 노래
이 봄 네가 이미 익숙한 모습으로 물 올릴 때 나는 너를 베는 칼날로 서겠다
바람에 살 섞어 흔들리는 초록 잎 속에 안기며 쓰러지며 키들대는 꽃이 되진 않겠다
휜 허리 곧추세워 발끝으로 선 채 들켜버린 그리움을 이제는 부끄러워하지 않겠다
눈보라에도 쓰러질 수 없던 지난겨울 오히려 황홀했던 내 투쟁
이제 비리디 비린 손 내밀어 뿌리 끝에서 네가 낚아 올리는 덧없는 희망에 눈물 흘리지 않겠다
소지 올리듯 불 타 한줄기 연기처럼 날아오르는 흰나비 그런 죽음이 마지막 기도라고 끝끝내 말하지 않겠다
이 갈아 악물은 내 허리를 꺾어다오 네 손에서 메마른 흰 뼈로 부서지며 날 세워 사선으로 베는 그리움의 칼날이 되겠다
詩 고경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