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는 쪽
단 한 번도
당신을 기다리는 일이 싫었던 적 없습니다.
5분, 10분, 반나절, 때로는 반 년
당신은 항상 늦었지만
당신을 기다리는 내 모습이 싫었던 적 없었어요.
기다리면 항상 당신이 와주기 때문에 그랬던 건 아닙니다.
가끔 당신은 오지 않았고
그때마다 당신, 놀랄 만큼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약속을 미루고, 나의 행복을 미루고
내 옆에 있어야 할 당신을 미루어 왔으니까요.
그리고보면 그런 아주 작은 일상의 징표들이
이를테면 어느쪽이 항상 5분 10분 늦게 도착하냐 따위가
그보다 훨씬 분명하고 고통스러운 진실의 증거가 된다는 것
당신은 현명하니까 나보다 한참 먼저 알았겠군요
그랬겠네요 아무리 늦게라도 당신이 나타나면
말보다 먼저 얼굴 전체에 번져버리는 내 웃음이 내 터무니없는 행복감이
그때의 당신에겐 얼마나 위험해 보였을까요...
지금도 그렇지요?
당신에겐 너무나 분명하지요?
5분을 늦고 10분을 늦는 그 아무렇지 않은 차이 만큼 내가 아무렇지 않지요?
그래도 나는 어떻게 생각하냐면
이번에도 당신이 늦고 있는 거지요.
약속시간이 지났는데 아직 집에서 내 전화를 받고 있었을 때처럼 아주 많이요.
당신, 자주 그랬거든요.
오늘은 조금 울었어요.
정말 한참을 괜찮았는데, 오늘 울었으니 또 한참을 괜찮을 겁니다.
그러니, 천천히 와요. 만나고 싶은 사람 다 만나고, 하고 싶은 일 다 하고
나를 위해 오지 말고 당신이 정말 오고 싶어졌을 때 와요.
그때쯤 나는 없겠지만, 기억까지 모두 흙이 되어 있겠지만
나의 모퉁이를 돌아 오면 당신이 돌아온 곳은 어디든 내가 기다리던 그곳이니까
당신, 조금 많이 늦은 것 뿐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