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것은 여유입니다.
이제는 한 발자욱을 남길 때조차도 마음에 여유를 가지는 자세를 가지게 되었다. 천천히 걸어가면서 천천히 생각을
한다. 그러다 보면 조급한 마음이 자연스럽게 사그라들게 마련이다.
아침부터 부산히 밖으로 나갔다가 온 A군은 어느 나라의 악기인지 모를 관악기를 불더니 가만히 앉아서 우리 일행이
가지고 있던 론리플래닛을 빌려보았다. 벌써 3개월째 미쉬라에서 장기투숙인 A군. 그는 강가강에 물이 차올라 가트로
다닐 수가 없게 되면 바라나시를 뜬다고 했다. 역시나, 가트로 다닐 수 없는 바라나시는 매력이 반감되는 것일까..
아마, 우리가 바라나시를 뜰 무렵에 이미 가트에 물이 많이 차올랐으니 아마 우리가 떠난 후 그도 곧 떠났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장기여행이라는 것은 여간해서는 하기 힘들다. 자신이 하고 있던 모든 일들을 중단해야하는 인생의 큰 전환점이기에
쉽사리 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실천하기에는 더욱 힘들다. 그리고, 더 큰 부담으로 다가오는 것은 나와 타인과의
비교로부터 온다. 내가 이루어 놓은 것과 타인이 이루어 놓은 것과의 비교. 그리고, 그들과 나 사이에 점점 벌어질 것 같은
소속감과 사회적 지위. 이러한 것들이 수 많은 사람들을 여행의 꿈 속에만 묶어두고 실천에 옮기지 못하게 할 것이다.
나는 겁이 났다. 내 또래보다 이미 1년이 늦어버린 상황. 한국남자 나이 26살. 이제 졸업을 하고 직장을 가지고
미래를 준비해야 할 나이였다. 그리고, 한참이나 늦어버린 나이지만 부모님의 그늘을 벗어나야 할 나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그렇다.
문득, 여유라는 것이 삶에서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지 새삼 느끼게 된다. 내가 옮기는 한 걸음 한 걸음에도 의미를 만들게 되는
요즘, 나는 참 천천히 살아가는 것 같다. 내가 최선의 길은 갈 수는 없지만, 나를 위한 편안한 길은 갈 수 있다는 안정이 찾아왔다.
많은 사람들을 알고, 많은 사람들을 사랑하며 받은 것보다 크게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지.. 그리고, 여전히 가슴 뜨거운
것에 눈물 흘릴 수 있는 내 자신에게 감사하며 이름도 모르는 A군에게도 감사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