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고 눈부시다 안녕하세요. 알렉스/김학선입니다. 봄이 저어기 모퉁이를 돌기전에 쭈구려앉아 신발끈을 묶고 있는데, 주말엔 비도 흩뿌리고 추워질듯 합니다. 다음 주가 되면 봄이 오려나 모르겠습니다. 빛이 풍부한 봄볕에 사진찍으러 고궁에 가시지 않으시겠어요? 레이소다를 통해 그동안 찍어 왔던 고궁 사진들로만 묶어 볼까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font color=white>창덕궁(昌德宮)내, 돈화문(敦化門)의 공포 서울 종로구 와룡동. 보물 제383호. 조선시대. 창덕궁의 정문으로 원래는 화강석조의 하얀색 댓돌이 있었고 그 위에 이층으로 세운 중문이었다. 이런 양식은 옛날 삼국시대로부터 궁궐의 정문으로 채택되어 왔다. 조선 선조(宣祖) 때 건립한 정면 5칸, 측면 2칸의 중층(重層) 우진각지붕집이다. 중앙의 3칸은 가운데 주열(柱列)에 각각 2짝씩 문짝을 달았으나 좌우 맨 끝의 칸과 측면 앞의 절반은 모두 벽을 쳐서 막았다. 위층은 누마루를 깔고, 4면에 작은 판문(板門)을 돌려 달았으며, 고주(高柱)는 좌우 2개만 있고 가운데는 넓은 공간을 이루고 있다. 다른 문루건축(門樓建築)은 고주를 가운데에 한 줄로 배치하는 일이 보통이지만, 이 돈화문은 그 일부를 생략하여 넓은 공간을 활용하도록 새로운 의도를 나타내었다. - 공포(<img src="http://100.empas.com/img/ttf/1/1.gif">包) *** 표준한자에 나오지 않는 단어라 그림으로 처리하였습니다. 목조건축에서 처마 끝의 하중을 받치기 위해 기둥머리 같은 데 짜맞추어 댄 나무 부재(部材). 공포는 상하층이 모두 내삼출목(內三出目) ·외이출목(外二出目)의 다포집 계통의 것으로 쇠서[牛舌]들의 형태는 아직도 건실한 기풍을 지녔다. 그러나 내부의 살미첨차들은 이미 적지 않게 장식적 요소가 나타나 변형되었다. 한때 돈화문은 창경궁(昌慶宮)의 명정전(明政殿) 등과 함께 임진왜란의 병화(兵火)를 면한 조선시대 초기의 건축이라 생각되어 왔으나, 명정전은 임진왜란 후에 재건한 건물임이 밝혀졌고 돈화문도 그 세부적인 수법을 서로 비교해 보면 임진왜란 이후의 건축임이 분명하다. </font> 행복하세요. PS) 사실의 소개는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알렉스
2003-03-14 05: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