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에 처음가서 석 달 크메르말을 배우고는
'이젠 사람들을 만나도 벙어리 신세를 면하겠구나'싶었다.
누군가가 마을에 들어간다기에 선뜻 따라 나섰는데
가보니 강변에 모여사는 베트남 이주민 마을이었다.
그 낭패감이란...
그저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채 씩-- 웃어만 주다가
안면 근육이 마비되는 것 같아 '이 짓도 더 이상 못하겠다' 싶어
빠져나오면서 핑계삼아 같이 간 사람의 카메라를 빌렸다.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며 사진을 찍다가 문득
마을 뒷길에서 한 떼의 아이들을 만났을때
사람과 사람사이에
사진기라는 존재도 엄연히 크게 한자리를 하고 있음을 알았다.
아이들을 불러모으고 저희들끼리 웃고 까불고 장난치게 만든건
말도 못하고 웃기만하는 삽십대 중반의 외국인이 아니라
고장나 줌은 커녕 렌즈 뚜껑도 제대로 안 닫히는 35미리 자동 필름 카메라였기에.
때론, 보는 이와 대상의 관계보다 사진기와 대상의 관계가 사진에 더 지배적일수 있다.
2001년 5월 카엣꼰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