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있었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줌의 톱밥을 불빛속에 던져주었다.
내면 깊숙히 할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취한듯
한두름의 굴비, 한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앓은 기침소리와
쓴약같은 입술담배 연기속에서 사륵사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같은 몇잎의 차창을 달고
밤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줌의 눈물을 불빛속에 던져주었다 "
" 사평역에서" - 곽재구
2002 년 12 월 사북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