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산책이나 하자더니
그냥 산책이나 하자더니
병원이 웬말이며 주사가 웬일이더냐.
세상 물정 모르고 정신없이 나대는 돌배기 일린이는 그렇다쳐도,
나 유찬흠은 조근조근 말하면 다 알아듣는 어엿한 다섯살 소년이란 말이다.
독감 주사를 맞는다면 처음부터 이래저래해서
주사를 맞아야 한다고 진작에 설명을 해줘야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지금 우는 것은 그깟 주사 바늘이 살갗을 파고드는 아픔 때문만은 아니다.
믿었던 사람에게서 당하는 배신보다 더한 아픔이 어디 있으랴.
필경 엄마 아빠는 주사를 맞고 난 뒤,
내가 좋아하는 어묵과 핫도그를 사주며 알량한 위로를 하려 들 것이다.
"우리 찬흠이 장하네 어쩌네." 하며.
흥, 내가 그깟 어묵과 같은 하찮은 물질적 보상이나
입에 발린 칭찬에 넘어갈 줄 알고.
유찬흠은 이제 더이상 울다가 웃으며 똥꼬에 털나는
'단-무-지' 얼라가 아니란 걸 아셔야지.
또래 벗님네들 부디 조심하소.
엄마 아빠가 산책이나 하자며 손을 잡아 끌 때는
음흉한 계략이 숨겨져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