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속 그 즐거움안으로...
지금은 사라진... 동대구역 발 통일호를 타고... 경주로 여행을 다녀왔을때가 있었습니다.
전..항상 창쪽을 조아했답니다..ㅎㅎㅎ
뭐..그리 오래전 일두 아닌......올초였던거 같군요...
잊혀지기전에..그것들과 함께했다는것이...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듭니다.
새만금도 그러했고... 용호동도 그러했고... ^^
어찌보면..이것도 행운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이미 사라진것들이지만..사진을 통해 다시 찾아보면서 그때 그때의 즐거움을 맛볼수있으니깐요..
음... 그러고보니..카메라라는걸 발명한 사람에게 ...참 고마움을 느끼게됩니다.. 히힛~!!
통일호라는 명칭이 쓰이기 시작한 것은 1955년부터이다.
당시로서는 가장 빠른 급행열차이자 객차(여객열차)에 편의상 붙인 명칭으로, 2004년 3월 31일까지 운행되었다.
1899년(광무 3) 경의선을 시작으로 한국에 철도가 개통된 이래 열차 이름은 여러 번에 걸쳐 변화를 거듭하였다.
1906년부터 융희호(隆熙號)로 불리다가 1936년 일본에서 시속 60㎞의 특급열차인 히카리호[光號]가 도입되어 부산-만주 구간을 운행하였다.
이어 일제에 의해 아카츠키호[曉號]로 고쳐 부르다가, 8·15광복 후 조선해방자로 고치면서 한국어 이름을 되찾았다.
1955년 남북통일의 염원을 담아 통일호라고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
당시 통일호는 완행·보통급행·급행 등을 압도하는 초특급 열차였고, 1963년 더 빠르고 경량화된 특급객차 115량을 일본으로부터 도입하면서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1960년 시속 95㎞의 무궁화호, 1969년 전기냉방이 갖추어진 관광호(새마을호)가 등장하면서 특급열차의 명성을
잃기 시작해 1983년 시속 120㎞의 새마을호가 운행되면서부터는 완전히 완행열차로 전락하였다.
이 때부터 통일호는 '낭만열차'로 불리며 서민들이 애용하는 열차로 자리를 굳혔다. 그 뒤 서민들과 행락객들의 이용이 꾸준히 늘어나
1991년 한 해에만 5700만 명에 달하는 일반승객을 수송해 최고 기록을 세운 뒤, 차츰 수송량이 줄어들기 시작하였다.
2000년 11월 증산-구절리 구간을 운행하던 정선선을 마지막으로 비둘기호가 없어진 뒤에는 가장 느린 객차가 되었고,
2004년 4월 1일 고속철도 개통과 함께 통일호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2004년 3월 31일 마지막 운행까지 전국 65개 노선, 636개 역에서 운행되었다. 이후 통일호가 운행되던 구간은 무궁화호로 대체되고,
경의선·경원선·군산선·대구선 등 주민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노선에 한해 이름만 바뀐 '도시 통근형 열차(동차)'가 운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