純秀(순수) Part. I
당신 앞에 서면
나는 한 송이 이름없는 들꽃입니다.
밤돋아 피었다간 다투어 지는 꽃.
채 묻어나지도 못할 때깔로 피어선
지레 내일이 두려워지는
그대로의 작은 들꽃입니다.
가지는 안개에 싸였습니다.
움츠러진 이파리엔 벌써부터
밤 서리가 분분합니다.
시선을 기다리는 꽃잎은
말없이 고개만 떨구우고
가득 물 오른 뿌리에는
어느 새 열매가 그립습니다.
하, 달빛도 부끄러운 오늘은
제게도 사랑이 있음입니까.
이렇듯 하야니 온몸이 부서짐은
달빛 속에 선 까닭입니까.
당신 앞에 선 까닭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