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정 - 연기 연습 중
엉크러진 머리, 구겨진 티셔츠 차림을 하고 카메라 앞에 앉았다.
공연 사흘 전... 늘 해보고 싶었지만, 무엇보다도 사람들이 무서워 미뤄두었던
연극 공연에의 도전을 앞두고 있었다.
학교에서 하는 아마추어 극에 불과했지만 나에게는 첫걸음을 내딛는다는 의미가 있었다.
“... (인생이란 연극에서) 나는 아직도 무대 뒤에 서 있는 듯 느껴져요. 커튼 뒤에 숨어,
어떤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할지 몰라 머뭇대는...“
수년 전 어떤 강의 시간의 중간고사를 대신했던 짧은 공연에서 자조적으로 뱉은 말이었다.
‘자, 이제 커튼을 밀치고 나설 차례다...’
그러나 늘 그러했듯 확신할 수가 없었다.
한 달을 준비했지만 정작 자신의 모습은 바라볼 수 없는 인간의 약점으로 내 자신이 어떤 모습으로 비춰질지 두려웠던 것이다.
그래서 카메라 앞에 섰다.
찰칵, 찰칵... 내게 주어진 대사와 동작과 표정을 취하는 사이 셔터 여닫히는 소리가 이어졌다.
엉크러진 머리, 허름한 셔츠, 흐릿한 불빛 아래서 뭉개진 모습으로 잡힌 내 자신의 모습은 몹시 낮설었다.
그 역시 또 다른 가면을 뒤집어 쓴 이미지임은 분명했지만 의도된 미소와 적절한 각도를 잡아 예쁘게 찍는 셀카에서는
볼 수 없던 또 다른 무엇이었다.
어쩌면 연극이라는 것은 내가 아닌 다른 그 무엇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의식하지 못한 새에 우리를 가둔 일상이란 가면, 혹은 커텐 뒤의 또 다른 자신의 모습을 찾아보는 과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 부족한 빛 때문에 뭉개진 얼굴을 보자니 문득 프란시스 베이컨의 초상들이 떠올랐다. 고정된 이미지가 아닌,
동적인 순간을 우연적 효과로 포착함으로서 모델의 본질적 특징을 더 잘 포착할 수 있다던 그의 그림들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