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의 노래
군관이 놓고 간 대나무 상자를 열었다.
쇠고기 5근과 술 2병이 들어 있었다.
임금의 명에 따라 도원수가 보낸 물건이었다.
갓 잡은 고기는 살에서 경련이 일듯이 싱싱했다.
칼이 한 번 멈칫 거린 듯, 칼 지나간 자리가 씹혀 있었다.
잘려진 단면에서 힘살과 실핏줄이 난해한 무늬를 드러냈다
붉은 살의 결들이 어디론지 흘러가고 있었다.
칼이 베고 지나간 목숨의 안쪽에 저러한 무늬가 살아 있었다.
내가 적의 칼에 베어지거나 임금의 칼에 베어 질 때,
나의 베어진 단면도 저러할 것인지를 생각했다.
단면은 떠오르지 않았다.
김훈의 [칼의 노래]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