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 5 - 에필로그
집나간 개를 위한 명상
김 승 희
드디어 며칠 전 루키가 집을 버리고
나갔다
언제나 살기 싫다는 표정으로
밥그릇을 노려보며 앉아있던
아니, 도대체, 왜 이렇게 시시해?……하고
항상 나를 노려보던
하얀 털북숭이
쇼펜하우어의 제자 같던 루키가
목줄을 끊고 열린 대문 틈새로
나를 박차고 나가버린 것이다.
식구들이 온통 나를 비난하는 것 같다
네 탓이지,
너 때문에,
네가 루키를 버렸지……
남편의 시선 속에서
왜 저것이 안 나가고 루키가 나갔나 하는
의아한 질문이
감출 수 없도록 너울대는 것 같다
엄마, 엄마, 엄마가 루키를……
그랬을까, 내가 정말 그랬을까
언제나 탈영하고 싶다고 꿈꾸었던
그의 마음을 이해하고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은밀한 소망으로 루키의 도망을
방조했다고는,
탈영시켰다는 건
말도 안 된다
아무렴, 말도 안 되고 말……(까?)
루키가 하얀 쇠사슬을 끊고
내가 모르는 미지의 길목 위를
달리는 꿈을 꾼다
루키가 버린 나 속에
갇혀 있는 나는
꿈과 생시를 통틀어 질투의 끈에
매어달려
루키를 따라 질질 끌려다니고 있는
피묻은 몽상의 바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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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가두는 것이
높은 담장과 둔중한 철문만은 아냐.
‘열린 囚人 갇힌 自由人’이라는 말도 있지 않던가.
나를 가두는 건 언제나 나 자신일 뿐.
정시에 공급되는 정량의 신선한 식사는
사슬보다 강한 힘으로 나를 옥죄지.
알량한 밥그릇을 지키려 囚人의 규칙에 길든
당신의 모습 또한 철창 안 나의 모습과 결코 다르지 않아.
내가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관객들 앞에서
재주를 자랑하는 잘난 내 친구들을 선망하듯
자네 또한 변칙과 반칙의 주류 사회를 동경하며
끝없이 기회를 엿보고 있지 않나.
자넨 인정하긴 싫겠지만 자네와 난
참 비슷한 점이 많은 것 같네.
생각해보면 우린 모두 새끼 낳고 젖먹이는
같은 포유류가 아니던가.
헌데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
재주 없는 팔자로 태어나 공연장 귀퉁이에 유배된 처지의 나와
才氣를 두루 갖춘 잘난 저 친구들이 뭐가 다르단 말인가.
우리는 모두 갇힌 자가 아니던가.
아마 그때가 시작이었던 것 같네.
내가 사육사의 길들이기와
재주를 가르치는 교육을 거부하기 시작한 것은.
내겐 이제 누구도 모르는 비밀한 계획이 있네.
1단계 - 한심한 태업으로 사육사와 정 떼기.
2단계 - 죽지 않을 만큼의 절식으로 관람용으로도 부족한 몸 만들기.
3단계 - 수의사의 눈에 영락없는 향수병 물개로 보일 수 있는 가련함을 연기하기.
난 반드시 돌아가고야 말 걸세.
내 생명의 근원인 남태평양의 그 바다로.
퇴화한 수성으로 인해 며칠도 안돼 그곳에서 굶어 죽을망정
나는 반드시 내 몸을 그 바다에 담그고야 말겠네.
아이들이 던져주는 비스킷에 망향의 슬픔을 잊는
한심한 저 원숭이처럼은 되지 않을 걸세.
절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