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의 성 1994년 겨울즈음으로 기억한다. 지하에 사무실을 차려놓고 밤낮 일만 하던 시절이었다. 책상엔 다 피워버린 말보로 레드 라벨이 내 키만큼 쌓여있고 담배연기 자욱한 사무실에서 마른 기침을 해가며 말없이 인생의 목표만을 생각하며 일에 찌들어 살때다. 문득 구형 워크맨에 연결된 조그만 pc스피커에서 나오는 여자 아이의 노래는 코딩하느라 다닥거리던 내손을 멈추고 한참을 멍하게 만들었던 바로 이 노래다. 수없이 반복해서 들을때마다 나는 상상속에 빠지곤 했다. 나의 상상은 언제나 하얀 말을 타고 갑옷을 입고 꼭대기에 갖혀 있을 공주를 생각하며 목숨을 건듯 침을 연신 꿀꺽 삼키며 창을 앞으로 곧추 세우고 성문앞에 서서 시작하는 것이었다. 오랫동안 정든 말의 근육과 갑옷의 차가운 느낌까지 너무나도 뚜렷한 상상이었다. 내가 미쳐버린게 아닌가... 어쩌면 돈키호테의 다중인격적인 환상과도 같은 이런 생각은 그 지하 사무실을 떠나면서 다신 들지 않았다. 그때의 열정과 꿈과 환상은 다시 찾기 어려운 걸까.
Sciolist
2004-05-13 1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