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편력기 3 - 아아, 고리키
여지껏 읽어 온 소설 중에 가장 강렬한 작품을 들라면,
나는 주저없이 막심 고리키의 <어머니>를 첫손 꼽는다.
고등학교 이학년 가을쯤이었을 게다.
사회과학 서적과 노동 관련 서적을 주로 출판해온 석탑 출판사가
발행한 작품이란 이유만으로 나는 내용조차 훑지 않고 이 책을 샀다.
저녁을 먹고 틀어박혀, 예의 엎드린 자세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2장의 중간쯤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책상으로 올라앉았고,
밤이 이슥해서야 마지막 장을 넘겼다.
얼마나 울었던지 화장실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은 번진 눈물로
참 후줄그레했다.
그후로도 나는 몇번을 더 울어가며 [어머니]를 읽었다.
그저 댄디한 젊은이에 지나지 않던 주인공 파벨 블라소프와
자식의 안위에 대한 염려밖에 몰랐던 어머니 닐로바가
러시아 혁명의 격랑 속에서 한 사람의 각성된 노동자요, 혁명가로
변전해 가는 모습을 그린 이 작품은 사회주의 리얼리즘
아니 비판적 리얼리즘의 가장 위대한 성취로 기억될 것이다.
이후로도 오스트로프스키의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었는가]와
글라드코프의 소설 [시멘트]가 나왔지만
고리키의 감동을 넘어서는 작품을 읽은 기억은 없다.
루카치나 제거스의 정련된 이론도 경화된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감동을 확보해주지는 못했다.
80년대 대학을 다닌 젊은이들은 누구나
고리키의 [어머니]와 잉게 숄의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으로
대학 생활을 시작했다.
[어머니]와 [아미자]는 짭새의 두려움을 잊고 짱돌을 쥐게 만든 용기의 원천이었다.
엄혹했던 80년대, 가슴 한켠의 두려움을 애써 지우며 거리에 섰던
젊은이들을 위해 [어머니]의 마지막 장을 인용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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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치지 마라 이놈들아!"
"청년들 !"
"왜 이래 이거!"
"오, 악당같은 놈 !"
"천벌받을 놈들 !"
"피로 이성을 죽일 것 같으냐, 진리를 어떻게 할 수 있을 줄 아느냐 !"
그녀는 목과 등을 호되게 밀리며 어깨, 머리 할 것 없이 수없이 두들겨 맞았다.
사방이 빙그르르 돌고, 고함과 울부짖는 소리, 호각소리에 소용돌이치면서 눈 앞이 캄캄해왔다.
무언가 둔하고 멍멍한 충격이 귀에 가해지면서 목이 아프고 숨이 꽉 막혔다.
발밑이 빙그르르 돌며 흔들렸다.
다리가 휘청거리고,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며, 고통이 심해지고, 몸이 무거워서 비틀비틀거렸다.
그러나 눈은 감겨지지 않았다.
그녀는 수많은 다른 눈들이 눈에 불꽃을 튀기며 빛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것은 어머니도 알고 있고 가슴에 간절한 불길로 빛나고 있는 눈들이었다.
그녀는 어딘지 모를 곳에서 문안으로 밀어 던져졌다.
그녀는 경찰의 손을 뿌리치며 문설주를 움켜 잡았다.
"피바다를 이루어도 진리를 마르게 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이 붙잡고 있는 손을 후려쳤다.
"천벌받을 놈들, 이 바보같은 놈들아! 네놈들 머리 위에---"
누군가 목을 잡고 누르기 시작했다. 목구멍에서 꼬르륵하는 소리가 났다.
"불쌍한 것들, 이 가련한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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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심 고리키(Maksim Gor'kii)는 '최대의 고통'이란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