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편력기 2 - 사회학에 눈뜨다
열여섯까지 그저 순진한 문학 소년이기만 했던 나는
한완상의 [민중과 지식인]을 읽은 후로 사회학에 눈뜨게 되었다.
아버지의 뼛골 빠지던 노동이 정당한 대가로 환원되지 않는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학교에서 그 누구도 자세히 설명해 주지 않던 그저 숙명으로만 강요되던
불평등과 가난의 원인이 거기에 있었다.
인간을 구조의 囚人에서 주인으로 환원시켜야 한다는
그이의 강강한 목소리가 지금도 귀에 쟁쟁하다.
그로 인해 나는 사회와 삶에 대한 새로운 '문제 의식'을 갖게 되었다.
앨빈 굴드너는 한완상의 책들을 탐독하다가 알게 된 미국의 급진적 사회학자이다.
이제는 누래지다 못해 붉은 색으로 변색되어가는 사진 속의 [지식인의 미래와 새로운 계급의 부상]은
내게 수많은 역사적 인간과의 만남을 주선한 책이다.
이 책에 고유명사로 각주로 등장하는 거의 모든 인물들의 책을 그 시기에 읽었다.
마르크스의 회상처럼 그 시절의 나는 '책을 삼키는 괴물'이었다
이 책을 비롯한 굴드너의 저작들은 문학적 아우라에 젖어 있던 나를
오귀스트 콩트와 앙리 생시몽, 바쿠닌과 막스 베버,
마르크스와 엥겔스 그리고 레닌과 트로츠키에게로 인도했다.
나는 마르크스와 레닌에게 깊이 침윤되어 갔다.
80년대의 어둠은 맑시즘을 등대로 여기기에 충분할 만큼이나 짙었다.
모든 생각은 변증법적 유물론과 사적 유물론의 토대 위에서 재구성 되었다.
간명한 이분법이 불변의 진리로 통용되던, 그로인해 참으로 행복했던 시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