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브의 자존심 쿠바에서의 첫 날 밤은 휴양지 바라데로에서 맞았다. 수도 아바나에서 약 2시간 정도 떨어진 바라데로는 육지에서 쭉 뻗어나간 반도인데, 폭 300여 미터에 길이는 20킬로나 된다. 길고 긴 반도의 좌우로 ‘마얀 블루’라는 카리브해 옥색 바다와 백사장이 펼쳐져 있으니 천혜의 휴양지임에 틀림없다. 수많은 호텔들이 들어서 있고, 지금도 공사 중인 호텔이 많다. 아름다운 자연을 보고 일행 중 한 분이 “바라데로 이름 한 번 잘 지었다. ‘바라(던) 대로’라서 바라데로인 갑다.”라고 해서 모두 웃었다. 다음날 아침은 해변에서의 자유시간이다. 나는 이 기회를 이용하여 새벽에 바라데로 읍내로 나갔다. 관광지보다 쿠바인들이 실제로 사는 모습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택시를 타고 시내 중심가로 가자니까, 성당 앞에 내려준다. 택시비는 5불. 성당 앞에는 시장이 있는데, 이른 아침이라 아직 가게 문들이 열리지 않았다. 시장 바로 뒤로 바다가 보여 잠시 백사장으로 나갔더니, 어느 할아버지가 해변에 밀려온 해초를 주워 망태기에 담고 있었다. 해변의 흰 모래는 너무나 부드러워, 용각산 파우더 같았다. 통에 담아 흔들면 사각이는 소리조차 나지 않는. 조그마한 시내를 가로지르는 넓은 길을 따라 조금 걷노라니, 골목 안에서 웬 여자아이가 나온다. 카메라를 목에 걸고 있는 나를 보더니, 홱 돌아서서 자기 갈 길로 곧장 걸어간다. 나는 왠지 모를 힘에 이끌려 그 아이를 따라갔다. 그 아이는 힐끗 뒤돌아보더니 걸음을 빨리 걸었다. 나는 그 애를 귀찮게 하지 않으려고 조심하면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따라갔다. 학교가 나타났다. 그 애는 교문 앞 큰 나무가 있는 곳에 이르러 갑자기 홱 돌아서더니 나무 앞에 서서 포즈를 취해준다. 쿠바의 전형적인 초등학생 교복을 입은 모습이다. 목에는 빨간 마후라를 감아 매었고, 피부는 백인과 흑인 혼혈로 전형적인 쿠바인의 모습이다. 파인더로 들여다보니 마침 황금색 아침햇살이 그 애의 얼굴을 비추고 있어서, 나는 기쁜 마음으로 셔터를 눌렀다. 나는 웃으면서 손을 들어 고마움을 표시했고, 그 애도 잠시 입가에 미소를 띠우고는 학교 쪽으로 팔랑이며 뛰어 들어갔다. 나는 이 사진에 <쿠바의 자존심>이란 제목을 붙여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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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4-15 1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