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의 누나 심상정 세밤만 자고나면 비례대표1번 국회의원 된다. 이 순간이 오기까지 전태일열사의 분신이 있었고, 많은 분들의 희생 위에 만들어지는 새로운 역사인지라 기쁜 마음으로 축하합니다. ************************************************ 심상정의 얼굴은 부드러운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러나 눈매와 입매는 단호하다. 금속노조원답게 목소리는 금속성을 띤다. 그의 삶을 반영하듯 강단 있는 인상이다. 그날의 방송에서 그는 발언을 많이 하지는 않았으나 그라는 존재가 갖는 질량을 분명히 드러냈다...... 지금까지 나는 '그'라고 계속 썼다. '그녀'라고 써야 했을까? 둘 중 하나를 택하고 나서 내심 버린 나머지 하나를 계속 염두에 두고 있었다면, 사실은 버린 그것을 택했어야 하는 게 아닐까? 왜 저거 말고 이걸 택했는지 영문을 알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라고 쓰는 게 더 적절하다는 판단을 했기에 '그'라고 썼을 게 아닌가. 아마 '그녀'라고 썼다면 '그'에 대해 미련을 두었을 게 틀림 없다. 계속 '그'라고 부른 게 마음에 걸린다면 이제라도 '그녀'라고 한 번 불러보자. 앞서 찾아 놓은 제목으로, "그녀가 승리해야 우리도 승리한다"고. 승리란 무엇일까? 경선에서 비례대표 1번 후보가 되는 것? 나아가 진보정당 출신 국회의원이 되는 것? 물론 그것도 승리다. 왜 아니겠는가. 그러나 그 승리란 새로운 도전이자 위태로운 모험의 시작이다. 이미 그녀가 통찰하고 있는 것처럼 그 승리란 것이 오히려 그녀를 욕되게 하고 결국 그녀를 쓰러뜨릴지도 모른다. 그녀가 그렇게 몰락한다면 그 몰락이 비단 그녀만의 몰락이겠는가? 그러니 그녀가, 내가, 우리가 바라는 '승리'는 그런 게 아닐 뿐더러, 여기서 '그녀'가 심상정 개인만을 지칭하는 것은 더더욱 아닐 것이다. 그런데 '우리'란 누구인가. 함부로 우리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나는 그 점을 모르지 않는다. 당장 심상정과 조주은, 이 글을 쓰는 나를 '우리'라고 뭉뚱그려 부를 수 있을지 그것도 불투명하다. 그렇다면 우리란 누구인가? 심상정 그리고/또는 민노당을 지지하는 사람들? 김진균 선생님이 말씀하시길 그 의미도 모호해졌다는 소위 노동자 계급의 정치세력화를 추구하는 사람들? 또는 여성의 정치참여 확대를 지지하는 사람들? 나는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한 의문을 안고서, "그녀가 승리해야 우리도 승리한다"는 애초의 제목을 무리하게 고수하려 한다. 새로운 도전을 결정한 심상정은 "보수정치의 얼음을 깨뜨리는 못"이 되겠다고 선언했다(링크). 권력과 자본의 도전은 늘 앞서가고 우리는 반발자국 앞서기도 어렵다는 심상정의 말이 자꾸 생각난다. 그녀 또는 그가 그 어려운 반발자국을 앞서서 용감히 도전하여 마침내 승리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 그녀가 승리해야 우리가 승리한다. *퍼슨웹 인터뷰기사에서
벽돌공
2004-04-13 22: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