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나시의 사람들 1 올해 89 세의 노장이었다. 인도 바라나시에서 태어났고, 바라나시에서 자랐다. 어렸을 적부터 갠지스 강과 함께 놀며 자랐다. 덕분에 자맥질은 단연 바라나시 최고였다. 내년이면 아흔에 접어드는 나이지만, 여전히 허리는 빳빳하다. 노 젓는 일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의 직업은 갠지스강 보트 드라이버이다. 평생토록 그가 해왔던 일이었다. 그의 팔뚝은 마른 체구에 비해 유난히 굵다. 나이가 들었지만, 여전히 힘도 세다. 젊었을 적에는 여남은 장정들과 혼자 싸워도 넉넉히 이겨낼 만큼 장사였다. 약간의 과장을 보탠 그의 막내 손자 말로는, 멀리 캘커타에서 바라나시까지 헤엄쳐 올 정도로 무한 체력의 소유자였다고 했다. 젊은 시절의 그가 캘커타 수영 대회에서 우승하던 날, 그는 바라나시의 영웅이었다. 그의 이름은 네팔리 마직. 그는 우리가 만난 보트 드라이버 중 가장 말이 없는 사람이었다. 비쩍 마른 체구에도 불구하고, 추운 겨울 새벽에도 얇은 룽기와 쿠루타 한 벌로 버티던 할아버지였다. 아무 말 없이 조용히, 강 건너까지 실어다 주고 조용히 기다려 주셨고, 또 조용히 가트까지 데려다 주셨었다. 첫 만남에서 그는 모델이었다. 따뜻한 햇볕 아래, 조용히 휴식을 취하고 있던 그가 우리의 시선을 끌었었다. 무례하게도, 허락도 구하지 않은 채 렌즈를 들이댔지만, 그는 그저 가볍게 웃어줄 뿐이었다. 다음에 그 길을 지나갈 때, 우리는 서로를 기억했다. "여어-" 시선이 마주쳤을 때 웃어 주었다. 꾸벅- 인사를 하고 지나가며 웬지 모를 정감을 느꼈었다. --- 그에게는 아들이 둘, 딸이 하나 있었다. 큰 아들의 직업도 역시, 보트 드라이버이다. 작은 아들은 오래 전에 죽었고, 딸은 바라나시에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시집을 갔다한다. 작은 아들이 죽은 후로, 그는 큰 아들과 말을 하지 않는다. 원래 다같이 살았었지만, 재산을 놓고 작은 며느리와 다투는 큰 아들이 보기 싫어, 집을 나와 버렸다. 남편을 잃고 혼자 울던 작은 며느리만을 데리고 자신의 집을 나와 버렸다. 덕분에 큰 아들은 아들 셋과 함께 강가 근교에서 까페를 운영하며 배불리 지낸다. 그는 매일 매일 보트를 저어 얻는 수입으로 겨우 살아가고 있지만. 그래도 그는 불평하지 않는다. 하루 하루 끼니를 해결할 수 있게 해주는 신의 배려에 감사할 뿐이다. 언젠가는 작은 며느리를 돌보아야 했던 자신의 마음을 큰 아들과 손자들이 알아줄 거라 믿으면서. ... 글이 너무 긴 것 같아 남은 이야기는 홈페이지로 옮깁니다. http://lilystudio.com Text by ihaa
openmac
2004-03-22 0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