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부근을 흐르는 금강의 하류 구간을 백마강으로 부른다. 백마강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크게 두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소정방이 백마의 머리를 미끼로 하여 용을 낚았던 바위를 조룡대(釣龍台)라 하고 강의 이름도 사하(泗河)에서 백마강(白馬江)으로 바뀌었다는 것과, 또하나는 예전부터 백제사람들이 금강을 백강(白江)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일본서기에는 백촌강(白村江)이라는 명칭이 나온다. 백마강은 사비백제의 중심지였다. 백마강을 따라 백제의 유적지가 많은데 대표적으로 백마 기슭에 있는 부소산이다. 부소산 안에는 부소산성, 군창지, 영일대, 송월대 터 등이 남아있다. 그리고 유명한 삼천 궁녀가 강물에 몸을 날렸다는 낙화암이 있다. 널리 알려진대로 삼천 궁녀는 문학적 허구이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서 등 어느 역사서에서도 삼천궁녀에 대한 기록이 없다. 다만 삼국기에 백제가 망하자 이곳에서 많은 백성들과 궁녀들이 죽었다는 기록은 있다. 의자왕과 삼천궁녀의 기원은 조선 중기 문인들의 시에서 유래되었다. 당에 항복한 의자왕은 백제가 망하자 당나라로 끌려가 그곳에서 병사한다. 망국의 왕이기 때문에 부정적인 기록이 많다. 유독 사치와 향락에 빠져 백제를 멸망으로 이끌었다는 평이 주를 이룬다. 패배자는 역사에 남기도 힘들고 남아도 왜곡되기 마련인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