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먼 바다에서 자욱히 안개가 밀려왔다. 나는 모래 언덕에서 서있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눈 앞에 바다가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내 주변의 모든 풍경들과 나도 함께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짙은 안개 속에서 갈대를 스치는 바람 소리가 들리고, 습하고 차가운 안개가 내 코를 통해 폐 속으로 들어왔다. 그러한 감각에 취해 사진기를 내려놓고 한참을 우두커니 서있었다. 눈으로는 풍경을 온전히 느끼는 것은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물며 사진은 얼마나 제한적인가.